토비의 커피하우스 (2) – 커피 볶기와 커피 만들기
열매를 제거하고 남은 씨를 햇볓에 이틀을 말리고 나니 뽀얀 색의 쌩 커피 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커피 원두로 만들기에는 아직 남은 과정이 있다. 바로 껍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대로는 커피를 만들기에 적합한 생두가 아니다. 여기서 다시 두 겹의 껍질을 제거해주고 남은 부분만을 가지고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말린 커피 빈을 비틀어보면 노란색의 제법 두툼하고 단단한 껍질이 벗겨진다. 그리고 나온 알맹이 안에도 얇은 속껍질이 남아있다. 그것까지 제거해야 제대로 된 커피원두가 된다. 아래 사진은 겉 껍질만 벗겨놓은 상태이다.
속 껍질은 손톱이나 날카로운 칼로 박박 긁어내야 벗겨진다. 이걸 언제 다 껍질을 벗길 것인가 생각하니 막막했다. 커피생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은 공장에서 기계에 넣어 비벼대서 껍질을 벗긴다고 했다. 그런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씩 껍질을 제거하려면 몇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보니 일단 볶고 나면 껍질이 쉽게 벗져진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 볶는 과정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볶는 것은 간단히 오븐을 이용했다. 말린 커피 빈을 트레이에 앏게 깔아서 담고 오븐의 온도를 최고로 올렸다. 약 260도. 잘못 볶으면 다 타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덜 볶아져서 맛과 향이 제대로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첨 해보는 것이라 긴장했지만 막상 그 과정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온도가 올라가고 나면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색이 점점 짙어지면서 강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온 집안에 커피 볶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몇번 열어서 저어주면서 좀 더 시간이 좀 더 지나고 하니 톡톡 소리가 나면서 튀는 빈들이 나왔다. 이게 팝핑이라고 하는 것인가 본데, 팝콘처럼 심하게 튀는 것은 아니지만 톡톡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재미있다. 제법 색이 진해지고 약간은 탄 냄새 같은 강한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가지 좀 더 기다렸다.
이렇게 해서 볶은 커피 빈을 얻었다. 자세히 보면 까만 것도 있지만 누런 색으로 남아있는 것도 있다. 일부는 제대로 볶아지고 일부는 안된 것일까?
그건 아니다. 겉이 아직 누런 것도 사실은 껍질이 색이 변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고, 안에는 까맣게 잘 볶아져 있다. 껍질을 반쯤 까보면 안에는 볶은 원두 산 것과 비슷한 색의 까만 빈이 보인다.
이제 껍질을 제거할 차례. 볶이 전보다는 훨씬 잘 벗겨진다. 어떤 건 잘 비벼주기만 해도 껍질이 제거된다. 하지만 어떤 것은 아예 부서지거나 잘 안되는 것도 있다. 특히 속 껍질은 잘 벗겨지지 않는 것이 많아서 제거하기가 제법 힘들다. 이렇게 해서 간신히 한잔 분량으로 만든 커피원두.
이 빈들을 그라인더로 곱게 갈아서 에스프레소 머신에 넣어서 한 잔 뽑아보았다. 원두 상태였을 때는 잘 몰랐는데 갈고 나니 향기가 매우 좋았다. 약간은 상큼한 향이 나는 듯 하다.
커피 맛을 잘 음미해 보도록 롱 블랙으로 한잔 만들었다.
맛은… 정말 끝내준다.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커피 맛은 처음인듯 하다. 향이 진하고 강하지만 씁쓸한 뒷맛이 없다. 상큼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도 좋고 깨끗한 뒷맛이 일품이다. 며칠간 고생고생해서 만든 보람이 느껴진다. 원두를 볶은 뒤 며칠은 숙성을 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냥 바로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좀 더 두면 다른 깊이 있는 맛이 나려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번에 껍질을 다 까기는 힘들 것 같고 매번 껍질을 까서 커피를 해먹으려니 그것도 나중에는 귀찮아졌다. 그래서 그냥 껍질채로 갈아서 먹어보는 만행을 저지르기로 했다. 껍질이 들어가면 맛이 떫어지고 어쩌고 하는데, 알께 뭐냐 그냥 먹어보자.
껍질채로 그라인더에 넣어보니 단단한 겉껍질 때문에 갈리는 속도가 더디다. 그래도 한잔 분량을 받아서 이번에는 아이스 커피로 만들어보았다. 맛을 대충 느끼기에는 아이스 커피가 역시… 날도 덥기도 하고. 막상 마셔보니 떫은 맛 따윈 거의 나지 않았다. 겉 껍질 때문인지 약간 나무 향 같은게 느껴지긴 했는데 별로 나쁘지 않았다. 대충 아이스 커피로 만들어먹으려면 귀찮은 껍질 제거 노가다는 안해도 그만이다. 아 시원해.
내가 아침마다 커피를 만들고 있으면 항상 평화가 달려와서 자기도 시켜달라고 조른다. 그라인더 버튼을 누르는 것이나, 커피를 누르는 것, 에스프레소 머신 버튼을 누르고, 나중에 스팀 스위치를 돌리는 것 등은 모두 평화의 몫이다. 그렇게 고생을 해도 사실 커피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린이를 위한 베이비치노다. 베이비치노는 카페에 가면 있는 메뉴인데, 아직 커피는 마실 수는 없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에스프레소 잔에 카푸치노의 우유거품만 담아주는 것이다. 나름 이쁜 잔에 자기들도 먹을 수 있는 우유거품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겉보기에는 어른 들이 먹는 카푸치노와 다를 바 없고. 초콜렛 가루라도 뿌려주면 환장한다.
카페에서 베이비치노는 80센트지만 집에서 3불짜리 우유를 사다가 직접 만들어주면 50잔은 가뿐히 나온다.
그래서 평화를 위한 베이비치노도 한잔 같이 만들었다. 크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거품만 가득 차있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이다.
온 입에 우유를 잔뜩 묻혀가면서 열심히 먹고 있는 평화. 커피수확 노가다에도 동원했는데 이런 거라도 보상이 있어야지.
자, 이렇게 해서 커피 만들어먹기는 여기서 끝. 이번에 수확한 커피는 일주일 정도 밤낮으로 마셔대니 모두 바닥났다. 아직 마당의 커피나무엔 2-3번쯤 더 따먹을 분량이 남아있지만, 다시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손님이라도 오면 농촌체험을 겸해서 좀 시켜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흠.
커피를 따고 만드는 과정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프리카에서는 5살짜리 아이들도 나가서 커피를 딴다고 한다. 그렇게 따서 말려서 커피생두를 제조해서 수십잔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인 1파운드 만들어봤자 커피업체로부터 겨우 60센트를 받는다고 한다. 공정무역이랍시고 좀 더 우대해준다는 곳도 겨우 그 두배를 준다고. 어쨌든 힘든 일이고 그 댓가는 형편없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값의 대부분은 대형 유통업체, 가공업체와 무선인터넷도 된다는 화려한 커피 숍의 이익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갑자기 커피 맛이 더 씁쓸해진다.
평화는 이제 건강해보이는군..
제대로 긴 염장 포스트네… 레시피라고 하기엔.. 농장부터 살 수도 없고.. @@
와~ 제가 꿈꾸는, 아니 제 아내가 꿈꾸는 삶이군요. 레몬나무와 커피나무와 블루베리… ^^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에 제주까지는 왔는데 여기서 다음 한발을 어떻게 디뎌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프로그래머의 삶을 포기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병행할 수 있는지 궁금한데, 토비님의 삶이 그져 부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