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

PaxCaelo 관성을 거슬러서

PaxCaelo 2023. 9. 27. 07:02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닌 창작 활동에는 관성이 강하게 적용된다. 관성은 우주에 빌트인된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수동적인 속성이다. 예외는 없어서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일정하게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다른 힘을 가하지 않으면 그 운동을 계속한다. 반면에 멈춰있는 물체는 힘을 주지 않으면 그대로 멈춰있다. 저절로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

 

20년 전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고 10여년 간 열심히 블로그에 글을 썼다. 그때 알았다.  블로그는 관성으로 한다는 것을. 아침마다 힘겹게 일어나 출근을 하는 건 그러지 않으면 상사나 고객이 화가 날 거고, 내 생계가 막막해질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있어서다. 하지만 아침에 블로그 글을 쓰는 건, 그저 어제 썼기 때문이다. 그제도 쓰고, 지난주에도 쓰고. 아침에 기술 뉴스 사이트를 훑어보다가 이거 재밌는데 싶으면 어느새 블로그 글쓰기 창을 열어 내용을 옮기고 내 의견을 더한다. 빠르면 5분, 길어도 10분이면 후다닥 한 편 끝. 한번 빠르게 적은 글은 다시 읽지 않는다. 맞춤법이든 띄어쓰기든, 단순 오타든 누가 와서 지적하기 전엔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청탁 원고나 저술을 할 때처럼 정성을 기울여 쓰면 글을 남기던 관성에 외력이 가해져 점차 느려지고 결국엔 손을 놓게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양치하듯이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게,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는 관성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삶의 작은 마찰이 쌓이면 서서히 관성을 잃고 결국 글 쓰기를 중단한다. 한번 멈추게 된 것은 계속 멈춰있으려는 관성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데 큰 힘이 필요하다. 그렇게 몇 달을 쉬다가,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두근거릴 정도의 큰 인사이트를 얻었다거나, 너무 재밌는 기술을 발견해서 나만 알고 있기가 너무 아깝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기술에 대해서 저따위 헛소리를 하다니 싶은 글을 발견했다거나, 아니면 너무 외로움이 크게 느껴질 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관성을 깨고 움직이려면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작은 자극이면 된다. 그게 내 안에 쌓아두었던 분출하고 싶었던 감정이나 생각, 나누고 싶은 지식 등을 꺼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면 다시 움직인다. 

 

하지만 내 책의 2판이 나온 2012년 이후로는 블로그를 방치했다. 전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블로그가 돌던 서버가 고장났고 백업 파일은 날아갔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정리해 버렸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는데, 가장 큰 건 책을 쓰면서 내 생각을 바닥까지 꺼내기만 했지 채우지는 못했다는 억울함이다. 내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는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1700페이지 넘게 끄적여놨으니 이젠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 또,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가볍게 생각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전에 블로그에서 그랬듯이 정제하지 않은,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던 생각 정도는 거기에 가볍게 흘리면 됐다. 어떨 땐 한 문장으로 끝나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고. 페이스북은 검색도 잘 안 돼서 남들이 볼까 하는 부담도 덜하다. 2000년대 초반에 쓴 블로그 글이 2010년대 중반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회자됐던 건 다 그놈의 구글 검색 탓이다. 

 

2000년 초반 웹 2.0 운동과 함께 인기를 얻었던 블로그 문화는 본격적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점차 사그러들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분위기의 플랫폼을 타고, 또 취업에도 도움이 되는 자기 컨텐트를 쌓고 싶은 개발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다시 활기를 띄는 듯하다. 한때 전문가들이 블로그 시절은 끝났다고 얘기한 게 무색할 정도다.

 

남들이 어쨌 건 나는 관성으로 계속 멈춰있었는데. 

 

얼마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다시 쓰고 싶어졌다. 재미없는 내 일상을 남기는 웹로그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 건 간단한 소셜 미디어가 있으니까. 그보다는 그냥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다나카 히로노부의 책을 다시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즐거워서 쓰는 글을 쓰고 싶고.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남기고 싶기도 하다. 명분을 만들 자극이 필요했는데 최근 그런 영향을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서버가 또 날아가면 안 되니까. 이번엔 설치형 대신 클라우드 플랫폼을 선택했다. 쓰고 싶은 주제도 하나둘씩 메모해두고 있다. 멈춰있는 관성을 거슬러 일단 시작하면 운동하는 관성이 도와줄 테니까 한번 힘을 내서 시작해 보자. 

 

티스토리가 다 좋은데 블로그 작성자 닉네임이 고유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내 이름인 Toby, 토비 다 뺐겼네. 그래서 PaxCaelo라고 하기로 했다. 팍스카엘로. 평화와 하늘이 이름을 라틴어로 적은 것이다. 내 가족신탁(family trust) 이름이기도 하다. 꽤 오랫동안 닉네임 없이 공식 영문 이름인 Toby를 써왔으니 이참에 닉네임도 하나 써보려고.

 

블로그 이름은 예전 그대로 Toby’s Epril이다. Epril은 파퓨아 뉴기니어로 4월이라는 뜻이다. 영어 기반의 혼성어(creole)라서 April과 비슷하다. 내 생일이기도 하고, 봄이기도 하고. 토비의 4월 혹은 토비의 봄. 내 회사 이름도 Epril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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