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개발자는 내실을 다져야하나?
총체적 위기라고 한다.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불황에 더 잘 나갈 수도 있는) 탄탄한 기업의 빵빵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의 개발자와 소위 에이스라고 불리는, 고객들에게 인기 있는 유명 컨설턴트를 제외한다면 아마 지금이 개발자와 소프트웨어 관련 종사자들에게 큰 위기라는 것을 대부분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링크한 글에서 말한 것처럼 산업과 기업의 위기가 개인의 위기가 되는 것은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이 망할 수도 있고, 감원을 할 수도 있다. 계약직인 경우는 프로젝트가 축소, 취소되고 새로운 일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럴 때 흔히 듣는 말이 바로 “위기 때에는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데 열중해야 한다”이다. 위 글에서는 “장기적으로 자신의 브랜드와 내실을 다지라. 이럴 때일 수록 내실을 키우는게 중요하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이 “내실을 다진다”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특별히 개발자에게는 무엇을 의미할까?
내실이라는 어려운 말부터 알아보자. 내실이란 “내적인 가치와 충실성”이라고 네이버제공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내실이란 결국 내적인 가치, 즉 자신이 보유한 가치라는 뜻이다. 브랜드라는 것은 그 가치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으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내실을 다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내적인 가치가 아니라 외적인 겉멋만 추구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내적인 가치를 방치하거나 하락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또 개발자에게 있어서 내실이란 무엇일까? 현재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은 내실이 아니고, 회사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말고 요령을 부려 여유 시간을 확보한 뒤 앞으로 몇년간 업계에서 많이 필요로 할 것 같은 기술을 공부하는데 최대한 시간을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재 있는 자리 또는 현재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발주사에 인정을 받아서 지속적으로 일거리와 자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원하는 어떤 충성심 내지는 열정, 실력을 보여주어 인사권자의 눈에 들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장의 기술적인 수요가 어떻게 바뀌고 흘러갈지 잘 모르니 최신 기술보다는 개발자의 내공을 쌓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더 기초적이고 원리에 충실한 학습과 훈련에 매진해야 할까? 또는 기술보다는 각종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고 인맥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체력을 증진시키고, 블로그나 커뮤니티 활동, 번역/저술, 기고등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는데 더 노력하는 것일까? 또는 그 모든 것일까?
어쩌면 어떤 이들은 뭔가 내 실력을 키우고 무엇인가 더 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스트레스에 빠져서 오히려 더 혼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더 잦은 술자리와 길어지는 커피 타임. (영회의 표현대로) 타임킬링용 네이버나 하면서도 생각없이 야근을 한다고 늦게 까지 남아 있거나, 뭔가 요즘 신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이런 저런 세미나나 발표회를 쫒아다니거나, 다 읽고 공부하지도 못할 두터운 기술 서적을 마구 구입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위기때 실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진다는 것은 그렇게 하면 위기를 잘 극복해서가 아닌 것 같다. 위기 때 뭔가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고 미래의 기술흐름을 쫒아가 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등의 노력으로 위기를 헤처나갈 뭔가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닌듯 하다.
오히려 위기 때 내실을 다지려는 노력이 의미 있는 것은, 편하고 안정적일 때보다 더 열심히 뭔가 노력할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기 때문인 것 같다. 똑같이 새로운 기술을 공부해도, 뭔가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에는 더 열심히 정신 차리고 할 수 있다. 잘나가던 시절에는 차일 피일 미루던 계획과 결심들을 위기 때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라도 제대로 지키고 실천할 수 있다.
7년전엔가 한참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가 있다. 2000년 초반 인터넷거품붕괴로 인력/프로젝트 시장은 완전히 붕괴되 버리고, 어렵사리 개발했던 한 솔루션은 도통 영업이 되지 않고, 반 년을 진행한 프로젝트는 발주회사가 갑자기 망해버려서 날라가 버리고, 좋은 기회가 생겨서 몇달을 투자해서 시작하려고 했던 일은 미국 9/11 테러의 후풍으로 모두 취소되 버리는 등의 파란만장한 시기를 보내고나서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서 안정은 됐지만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 밤에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가도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는 10분 이상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들지 않으면 바로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같으면 잠이 안오면 블로그나 뉴스 따위를 둘러보거나 미드를 보거나 아니면 가벼운 책이나 잠시 읽다가 다시 잠자려고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여러번의 실패로 지쳤던 마음이었고,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어떤 종류의 일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았던 때였는데, 그런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바로 조용한 밤중에 무엇인가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잠이 쏟아져서 고개가 떨궈지기 까지 그렇게 인터넷을 살펴보고 기술의 흐름을 따라서 하나 둘씩 공부하면서 여러가지 지식을 쌓고, 기술을 공부하고, 개발 훈련을 하면서 거의 매일 밤을 보낸 것 같다.
그때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것이 겨우 2.0이 나왔지만 별 인기가 없고 오히려 무시당하던 하이버네이트와 1.0도 나오지 않은 베타버전의 스프링이었다. 그때 낮부터 저녁까지 이런 저런 일로 피곤하게 일하고, 밤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했던 스프링 덕분에 그 다음 해에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스프링을 통해서 개발하는 일을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수주할 수 있었다. 그때 준비가 없었다면 글세… EJB2를 가지고 아마 삽질을 하면서 고생을 했거나 아니면 아예 일을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긴장감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때만큼 무엇엔가에 깊이 집중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계획을 세우고 달려갔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여유가 있기 때문일까 그만큼의 집중이 잘 안된다. 그래서 좀 더 위기를 느꼈으면 싶을 때도 있다. 위기야 말로 정말 자신의 내실을 다지고 실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 때일 수록 내실을 키우는게 중요하다”라기 보다는 “위기 때가 내실을 키우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든다.
위기를 통해 내실을 다지는 것이 주는 유익은 대부분 위기가 지나고 나서 얻어진다고 생각된다. 경제나 산업의 위기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되고 번성할 때가 찾아온다. 그때가 바로 기회의 때다. 갑자기 인력과 리소스의 수요가 많아지고, 새로운 기술과 트랜드가 번성하게 되는 그때가 위기 때 쌓은 내실이 가치를 발할 때이다. 남들보다 한 걸음 정도만 먼저 나가 있고 미리 준비되어졌다면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변하고 넘처나는 위기가 끝날 즈음에는 큰 기회를 잡고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노력한 것이, 다져놓은 자신의 실력이 어디가겠는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계속 기회가 올 때마다 뭔가 하나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리 내실을 다지고 실력을 키워도 위기는 위기고 운이 나쁘면 매우 고생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는 당장 실력을 키우는 노력을 해봤자 현실적으로 뭔가 보답이 바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말자. 위기가 주는 긴장감은 아마 평소보다 몇배의 집중력을 갖게 도와줄 것이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만큼 보답을 해줄 것이다.
위기 때에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심은 대로 거둔다”이다. 스프링으로 첫 프로젝트를 하던 2004년 초반에는 아침에 일아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6시부터 한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인쇄한 스프링 레퍼런스를 계속 정독했다. 그때는 스프링관련 서적도 하나도 없을 때다. Spring In Action은 커녕, J2EE Development without EJB도 나오기 전이다. 큰 글씨로 겨우 40-50페이지되는 레퍼런스 매뉴얼과 API문서와 초간단 예제가 전부였다. 아직 초창기의 스프링이었지만 그때의 노력 덕분에 스프링에 대해서는 거의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다 공부하고, 소스를 거의 대부분 다 분석하고, 포럼의 글을 빼놓지 않고 다 읽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처음 써보는 스프링과 하이버네이트를 가지고, 역시 처음 경험해보는 개발자들과 함께 일년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그때 심어둔 스프링 지식을 가지고 그 뒤로 몇년은 울궈먹었던 것 같다. 그 후에는 좀 게을러진게 문제긴 하지만…
위기라니까 왠지 반갑다. 이제 다시 뭔가 심을 때가 아닌가.
노력을 하려고 계획하고 진행하다 보면 어려움이 있기 마련 인것 같습니다.
가장 큰 적은 내면의 적…
온갖 부정적인 경우를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고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맞는건가?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때문에 외부요인이 아닌 내부 요인으로
혼자 시작했다가 포기했다를 많이 반복합니다.
실패와 포기의 반복으로 인해 느슨해지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습관이 들어버리죠.
슬픕니다.
다시한번 맘을 다잡아야 하는 시기가 온것 같네요.
아… 다시한번이 아니라 처음 이겠군요.ㅋㅋ
글의 내용 처럼 그래도! 무언가!
노력하고 있던 사람들만이 기회를 잡는것에는 동의가 많이 되네요.
다시 도약하는 위한 시간을 잘 준비하시기 바라고
저 또한 그랬으면 하네요.
화이팅 ~ ^^
이 글을 읽고 딱 4년전 첫 프로젝트 때가 생각이 나네요 ^_^
그때 openLaszlo 로 공부+실전적용 하느라 똥줄 빠지는줄 알았습니다.
제 경우는 그때의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추후 사용되지 않아 묻혀 버렸지만,
신입시절 어떤 안목을 키우고 향상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던거 같습니다.
너무 마음에 와 닿아 제 블로그로 담아갑니다 ^_^
선배님의 좋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픈소스에 대한 것은 시중에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개발자의 경험담은 많이 드물어요..
‘2009년에 뭐할까?’라는 의문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었는데
이 글을 읽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정말 마음에 확 와닿는 글입니다.
난세엔 공부를 하라는 친하게 지내던 교수님 말이 확 생각나네요 ^^
이런게 정말 역발상이군요.. 위기라서 내실을 다져야하는 게 아니라 위기는 내실을 다지기에 더 좋은 기회다…
이 말 좋네요.. 학교다닐 때 시험보기 전날 밤이나 시험보기 전 쉬는 시간이 가장 공부가 잘 됐던 기억도 나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