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하고 왜곡된 기억과 진하게 남은 느낌을 바탕으로 쓰는 토스3이 나오기까지 세 번째.

사람의 기억은 쉽게 왜곡된다. 굳이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 이론 따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자신이나 주위의 경험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어떤 사람이 "토비가 영회 멘토인데, 멘토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 영회가 저 모양이다"는 식의 글을 비아냥 거리기 위해서 써논 것을 본적이 있다. 당연히 나는 영회의 멘토가 아니다. 내가 영회한테 뭘 가르쳐주거나, 영향을 준 것도 없고, 영회는 내 말 따위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버린다. 어쩌다보니 같이 활동을 많이 하게되고 미운정이 많이 들어 친한척 지내는 사이일 뿐.

영회와의 인연은 영회가 오래전에 스프링MVC 분석 글을 쓰면서 하도 틀린 얘기를 많이 해서 매번 가서 틀린 내용을 댓글로 지적해주다가, 어느날 우연히 찌질이 EJB빠가 등장해서 영회 글을  까는 것을 보고 영회(사실은 스프링)편을 들어준 덕에 어쩌다 친해진 것이다. 강한척 하지만 사실은 매우 소심한 영회는 내가 순수하게 기술적으로 잘못된 설명을 정정해 주는 글을 남겼던 것인데도, 그 일을 지금까지 마음에 품고 있다가 얼마전에 내 책을 마감하는 시점에 축하 댓글을 술김에 남기면서 "형이 4년전에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로 깠던 것 이제 다 용서해줄께"라고 적을 만큼 마음이 여리다. 얘기가 샜는데, 더 이상 자기 얘기를 쓰면 "토스3 홍보대사를 그만 두겠다"고 협박한게 있어서 여기까지.

아무튼, 하려고 했던 얘기는 왜 그 사람이 나를 영회 멘토라고 오해했을까이다. 그 사람은 멘토인 내가 권유해서 영회가 모임에 나왔다고 소개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고 주장했다. 영회가 모 협의회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자기 소개를 하면서, 아는 형이 권유해서 나왔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을 "아는 형 + 모임 참석 권유 = 멘토가 하는 짓"라는 자신이 친숙한 공식을 적용해서 "영회는 토비라는 멘토가 있고, 그의 권유로 모임에 나왔다"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아마 그렇게 자신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입력이 전환되서 기억에 저장되면,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게 생성하게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기 쉽상이다. 영회가 당시에 미쳤거나 여친에게 혼나고 흥분 상태에 있던 것이 아니라면 "멘토"라는 평소에 절대 사용하지 않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내 얘기도 그런 식으로 살며시 왜곡되어서 저장된 것을 바탕으로 했을 수도 있다는 disclaimer. 물론 전혀 없는 사실을 상상하거나 꾸며낸 것은 아니니, 구체적인 인용에서 일부 표현이 달라졌으면 몰라도 내 얘기가 거짓은 아닐테다. 그리고 이 블로그는 내 어설픈 기억과 경험, 지식을 꺼내놓는 장소이니 뭐 어떤가. 출간할 책도 아니고.

 

다시 2007년. 계약을 하긴 했지만 사실 책을 어떻게 쓸지, 내용은 어떤 것을 담을지에 대해서 아무런 결정된 것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2007년는 책을 단 한 줄도 쓴 것이 없다. 구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도 없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이 정신없는 새로운 일과 도전으로 가득찬 한 해를 보내다보니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내 성격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그다지 출판사에서 압박 내지는 재촉을 받은게 없다는 사실이다.

나도 영회 못지 않게 마음이 여려서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노골적인 지적을 받으면 감정이 쉽게 상하고 한동안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왠만하면 남에게 지적 받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아마도 출판사에서 "책을 언제까지 쓸거냐. 왜 빨리 안쓰냐"라고 재촉했으면 결과는 두 가지 중의 하나로 났을 것이다. 책이 어설프게 나마 빨리(2007년 내에) 나오든가 아니면 아예 책 쓰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내 장점은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뭐든 빨리 포기하는 것이다. 또는 욕을 먹거나 지적을 받으면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밤을 새서라도 빨리 일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아무튼 수시로 연락해서 진도를 확인하고, 이런 저런 경고를 받았다면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책부터 쓰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출판사, 내가 가진 유일한 커넥션인 김희정 부사장님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초반에 출판사 사무실을 방문하고 출판사가 주관하는 번개나 모임 등에 가서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책을 쓰기로 했다는 얘기를 하면 주위를 살피고 조용히 이런 저런 충고를 해주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는 "김희정 부사장님을 조심하라"였다. Y,K,P 님의 설명에 따르면 김희정 부사장님은 번역이나 저술이 늦어져도 절대 재촉하거나 기분 나쁜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항상 친절한 말투로 편안한 이야기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막상 역자나 저자들은 강한 압박감을 받고 꼼짝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방심하면 나중에 부담이 100만배로 늘어나서 꼼짝 못하게 될 것이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사실이었다.

2007년에 내가 쓴 책과 관련된 유일한 내용은 다른 직원 분을 통해서 요청을 받은 "목차"가 전부였다. 사실 당시에 내가 작성한 목차는 그냥 스프링 기술 목록을 쭉 나열해가면서 형식적으로 쓴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구상도 안된 마당에 목차가 어찌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얼마 후에 만난 김희정 부사장님은 "설마 이 걸 다 쓰실려는 것은 아니죠?"라는 말로 시작해서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조언을 편안하게 해주셨다. 예를 들면 "책은 초보자들이 볼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해요. 욕심 내지 마시고 2권(2판 말고 2권)을 추가로 낼거라는 생각으로 꼭 필요한 내용만 뽑아서 먼저 1권을 써주세요. 뭘 넣을지 고민하지 마시고 뭘 뺄지 생각해보세요"와 같은 얘기였다. 일반적이고 편안한 얘기였는데 이 얘기가 한 번 두 번 반복되다보니 나중에는 원고를 쓰려고 워드를 열 때마다 머리 속에 "초보자, 쉬운 책, 2권 내용은 빼고 일단 1권용, 뭘 뺄까…"와 같은 말들이 머리 속에 떠돌아 다니는 정도가 됐다. 거의 강박관념이 되다보니, 한 문단을 써놓고 다시 읽어본 뒤에 "이걸 더 쉽게 풀어 써야햇"이라는 생각에 그걸 다시 풀어서 2페이지로 늘려 쓰게 되는 식이었다. 편안한 말투와 조언에도 순진하고 착한 나같은 엔지니어 출신 초보 저자가 얼마나 쉽게 세뇌될 수 있는지를 나중에야 깨달았다.

아무튼, 아무리 진도가 나가지 않아도 충격적인 얘기나 경고 같은 것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였을 뿐. 또는 다른 책 얘기, 다른 번역 얘기, 다른 저자 얘기 등등. 과도한 친절을 받았을 때 쌓이는 부담감이 그렇게 늘어나고 있을 때 어느날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바로 나를 출판사에 소개시켜준 정희용 편집장(아마 당시엔 마소 편집장이었을 것이다)이 어느날 메신저에 들어오더니 "형, 제발 책좀 빨리 써줘. 출판사 들어갈 때마다 내가 맨날 혼나. 도데체 이 사람은 책을 언제 쓰는 거냐고 나만 깨진단 말이야"라는 말을 남겼다.

두둥. 이런 저런 다른 바쁜 일들이 거의 머리 속을 점령하고 있어서 가끔 떠오르는 책을 써야겠다는 부담감을 자꾸 뒤쪽으로 몰아내고 있던 차에, 그런 얘기를 들으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두근. "알았어 빨리 쓸게 걱정마"라고 말을 하고 나니 식은 땀이 흘렀다.

물론 그 일이 있고 나서도 2007년이 끝나기까지 원고는 한 줄도 쓰지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커진 부담감으로 책의 내용과 구성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로부터 2년 넘게 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긴장속에서 구상했던 내용과 구성이 지금 책의 바탕이 되었다.  책 내용을 구상한 얘기는 다음에 하고, 일단 그때 느낌을 조금 더 적어봐야겠다.

 

희용이의 얘기를 듣고 나니 나에게 조언해주던 여러 다른 역자, 저자 내지는 출판사에 들락 거리던 사람들의 얘기가 떠올랐다. 편안하게 대해준다고 내가 너무 방심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과연 희용이의 얘기는 얼마나 진실일까?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세 가지 가정을 해봤다. 첫째는 정말 김 부사장님은 내가 책을 빨리 안써서 대단히 화가 나있었고, 그 때문에 나를 추천해준 희용가 정말 매번 혼났다는 것. 그래서 맘 착한 희용이가 견디다 못해 나한테 얘기를 했다는 생각. 두 번째는 사실 김 부사장님은 편안하게 "책이 좀 늦어지는 것 같은데, 어쩌나"라는 식으로 편안하게 얘기했지만 희용이가 이를 과정해서 자기가 맨날 혼난다고 중간에서 상황을 조작했다는 것. 경험도 없는 초짜 저자를 소개해준 사람으로서 부담이 있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 마지막으로는 스스로 찔린 희용이가 얘기를 지어냈을 것이라는 것. 사실은 김 부사장님은 별다른 얘기가 없었음에도 진도가 안나가는 것을 눈치챈 희용이가 꾀를 내서 나한테 부담이 가도록 "내가 형 때문에 맨날 혼나. 살려줘"라고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얼마전에 처음으로 확인해보니 희용이는 당연히 첫 번째라고 대답했다. 나는 세 번째라고 믿고 싶은데…

몇 가지 이후에 일어난 일을 참고해서 생각해보면 첫 번째였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책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에 아마도 내가 부담이 많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김희정 부사장님은 이런 얘기를 하셨다. "그동안 재촉해 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재촉한다고 빨리 썼을 것도 아니고해서…". 또, 희용이는 추천사에 "책이 나오지 못하게 될까바 조마조마 했다"고 쓰기도 했다. 흑.

남은 의문은 희용이가 나에게 그 얘기를 전달한 것이 단지 나랑 친한 사이였고, 소개한 사람 입장에서 얘기를 해줘야 겠다는 스스로의 판단에서 였는지 아니면 김 부사장님의 고도의 계산, 즉 측면 공략의 결과였는지이다. 원래 군대나 직장에서도 고참이 신입에게 직접 뭐라고 하지 않는다. 다 중간을 불러서 대신 깬다. 사실 신병 입장에서는 그게 더 견디기 힘들다. 내가 이병 때 당시 소속해 있던 군악대 분위기가 좀 늘어졌을 때가 있었다. 특히 행사나가서 삑사리 나는 게 늘면서 당시 최고참들이 좀 화가났던 것 같다. 연습실로 집합. 그리고 자기 바로 아래 교육 기수를 불러내서 우리가 보는 앞에서 교육 기수를 굴렸다. 차라리 다 같이 깨주면 좋은데…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설명 안해도 알만할 것이다. 사실 직접 구를 때는 맘이라도 편하다. 오히려 우리가 잘못한 것 때문에 중간 기수가 깨지는 것을 보는게 더욱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내가 직접 잔소리를 들었다면 나았을 텐데, 착한 희용이가 나 때문에 맨날 혼나고 다닌 다는 얘기를 들으니 두 배로 마음이 아팠다. 부담은 세 배로 커졌고. 내가 궁금한 것은 과연 그 때 일이 고도의 계산에 따라 일어난 일이지의 여부인데. 그 뒤로도 직접 대면하거나 대화를 할 때는 나에게 계속 친절하게만 얘기해주신 것을 보면 이게 참 헷갈린다. 적당히 의심은 가지만 사실 확실히 알 수 없을 때 사람은 더 긴장하게 된다. 아마 나에게 조언해 줬던 역자, 저자 분들이 경험했던 강한 압박감도 아마 그런 혼란이 가중되서 발생한 것이 아닐까. 친절한 정면 공략과 강력한 측면 공격의 콤보.

그 날 이후로 책을 빨리써야 겠다는 생각과 부담 없이 하루도 잠자리에 든 적이 없는 것 같다. 문제가 있으면 그걸 해결해야 부담이 풀린다.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는 일을 해버리면 풀린다. 그런데 이 놈의 책은 하루 이틀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그런 부담 속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책 구성과 저술 시작, 그리고 호주로의 이주 등등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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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토비의 스프링 3이 나오기까지 (3)”

  1. 당연히. 정답은……….
    .
    .
    .
    4번입니다. :)

  2. 이번에는 정희용대표가 삐지는건 아니야? ㅋㅋ
    예상과 달리 먹튀 아저씨의 색안경으로 시작했군.
    나날이 글쓰는 모양새가 새련되지네..

    ‘어쩌다보니 … 친한척 지내는 사이일 뿐.’

    친한척이라는 표현이 살짝 위험 수위인데, 홍보대사는 계속 해주지. 앞으로도 지켜보겠어.. :)

    ‘영회는 내 말 따위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버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데…
    여친은 내가 형말은 죄다 믿는다고 하더라고…
    그 이유는 바로 형이 한 번에 100마디를 하니까 90개는 흘려버리고 10개만 듣는거야.

  3. ㅋㅋㅋ 너무 재미있…

  4. 궁금한데… 이거 몇 부작이야?

  5. 원래 팬픽은 아오이판 등등 여러가지로 나와야 하거늘,

    영회 버전, bliss 버전, ksug 버전 등 우리도 갖가지 외전을 준비해야겠어요.ㅋ

  6. 아 토비 형의 집필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 생사를 넘나드는 밤샘 작업의 대서사시 출판 잔혹사는 계속 되는군요.
    ㅎㅎ
    암튼 이 글의 핵심은 호랭이는 착한 놈이한 거군요.
    ㅎㅎ

  7. 미투에서 출간 소식이 자주 보여서 여기까지 들렀네요.

    글을 보다보니 제 얘기가 나와 있길래,
    살짝 불쾌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덧글을 달고 있더군요. -_-;
    (Fact만 놓고 얘기하자면, 저도 할 얘기가 많은가 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지난 일이고,
    또 저희 팀 멤버와도 인연이 있으시다고 들어서 그냥 웃으며 덧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

    책은 아직 살펴보지 못했으나 애정을 갖고 쓰신만큼 국내 개발자들에게 좋은 가이드로 남기를 기대해봅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8. Jay Cho/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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