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02009

지난 토요일 밤. 처음으로 평화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지난 주 초부터 콧물도 좀 나고 열도 38도정도까지 올랐다가 내렸다가 하길래, 환절기라 감기기운이 좀 있나보다라고만 생각하고 별 걱정은 안했는데, 토요일 오후부터 열이 급격하게 오르더니 38도, 39도를 넘어서 40도까지 올라갔다. 해열제를 먹이고 찬물에 담그기까지 하면서 애를 써봤지만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고 39~40도에 머물렀고 결국 밤 늦게 40.6도가 찍힌 체온계를 보고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호주 생활 10년만에 처음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응급실에 가긴 했지만 정신을 잃고 발작을 하는 수준은 아니니 그냥 응급실 한편의 야간 진료소 쪽으로 가서 접수를 하고 진찰을 받아야 했다. 대기실에는 주말 밤이긴 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일단 증상을 말하고 간단히 검사를 받고, 집에서 먹었던 것보다 강력한 해열제를 받아서 먹여놓고는 하염없이 진료 차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밤 중에 응급실까지 찾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한번 진찰실에 들어가면 제법 오래 시간이 걸린다. 문득 시드니에 사는 앤드류가 해준 얘기가 생각났다. 애기 아파서 응급실 가면 대기시간이 길어서 기다리는 중에 나아서 돌아온다고.

대기실이 서늘해서 그랬는지 병원에서 준 해열제가 잘 들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기다리는 중에 열이 좀 내렸다. 그래봐야 37~8도 수준이기는 하지만 40이 넘는 숫자를 봤을 때의 충격 때문인지 그 정도면 안심이 됐다. 의사는 낮에 다시 보기로 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 겨우 잠을 재우긴 했지만 몇시간에 한번씩 다시 열이 40도를 넘게 오르고, 그러면 물에 집어 넣거나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주면서 겨우겨우 버텨야 했다.

일요일 오전에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는 열이 40.7도까지 올랐다. 귀로 재는 체온계는 기준 체온인 항문체온보다 0.5도 적게 나온다고 하니, 사실 41.2도 까지 오른 것이다. 41.7도가 넘으면 뇌에 이상이 오고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체온을 잰 간호사마저 놀라서 다급하게 차가운 물에 적신 스폰지로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간신히 체온을 39도 대로 내려놓고는 겨우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검사를 해봐도 설사나 호흡곤란 등 다른 증상은 특별한게 없으니 결국 바이러스 때문이 확실하다고 했다. 신종플루인지 시드니A형인지 방콕B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바이러스라고. 별다른 치료 방법도 없으니 결국 몸이 견뎌내야 하고, 그 사이 열이 심하게 오르지 않도록만 잘 조절해주면서 해열제를 먹이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또 열이 오르내리며 하루가 더 지났다. 다행이 오늘은 40도까지 한번, 39도까지 한번씩 밖에 오르지 않았다. 주말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것이긴 하지만, 반대로 열이 내릴때는 35.1도까지 내려가서 저체온이 걱정될 정도로 몸이 차가워 져 체온조절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 되기도 했다.

열이 급격히 올라서 홀딱 벗기고 찬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면 온도차로 인해 몸이 많이 괴로운지 울면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직 할줄 아는 말이라곤 엄마 아빠를 포함해서 열 단어도 채 되지 않는 아이인데, 뭐라고 말도 못하고 신음소리만 내면서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말 아프다. 두배로 아파도 괜찮으니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 싶었다.

오늘 밤에는 잘 견디고 내일부터는 더 이상 열이 오르지 않고 잘 지내기를.. 그래서 주말에는 평화가 좋아하는 공원에 나가서 미끄럼도 타고 바닷가에 가서 모래장난도 하면서 맘 것 놀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퀸즈랜드 150주년 기념으로 작년에 처음 등장했던 퀸즈랜드 거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초저렴 테마파크 연간회원 제도가 올해 QLD VIP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일년간 워너브라더스 빌리지 테마 파크 3개 (MovieWorld, SeaWorld, Wet’n Wild)를 무제한으로 방문할 수 있는 회원권이 99불이면 구입 가능하다. 물론 퀸즈랜드 거주자여야만 한다. 테마 파크 한군데만 가려고 해도 하루 70불 가까운 입장료를 내야 것을 생각하면 거의 거저나 다름없다. 게다가 그 중 두 개는 우리집에서 15분이면 갈 수 있고, 나머지 하나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동네 공원이나 수영장 간다고 생각하고 가도 그만일듯. 일거리 많은 시드니를 떠나서 별 할 일은 없어도 즐기기 좋은 호주 최대 휴양지로 이사한 보람이 있다.

잽싸게 인터넷으로 등록을 하고 회원카드를 받을 겸 해서 워너브라더스 무비월드에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평화랑 함께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에 가는 것은 처음이다. 무비월드는 신혼여행 때인 10년전에 아내와 함께 왔던 곳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봤던 디즈니 MGM스튜디오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거대한 테마파크들에 비해서 규모는 작지만 나름 구경할 것도 많고 아기자기하게 즐기기 좋은 곳이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새로 생긴 놀이기구인 배트맨 다크나이트 어쩌고나

 

시속 100킬로까지 2초 걸린다는 수퍼맨 어쩌고를 타고 싶었으나

평화의 관심은 오직한 곳

Bugs Bunny가 반겨주는 키즈 워너브라더스 뿐

아직 두살도 안되고 키도 모자라서 대부분의 놀이기구를 즐기진 못했지만 엄마랑 함께 탈수 있는 기차와

다시 타자고 졸라서 두번이나 탄 회전목마에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름 호기심을 보였던 것이 배트맨 영화촬영에 실제로 사용된 것이라는 배트맨 보트였는데

 

막상 배트맨을 만나서 사진찍으려 했더니는 무서워서 울어버렸다.

한 두시간 즐기고 집으로 돌아와도 아깝지 않아서 좋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츄로스를 먹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는데.. 평화는 맛만 보여주려 했더니 한 개를 혼자 다 먹어버렸다. 나는 겨우 반쪽 먹었는데…

자주 놀러 가야겠다.

이제 20개월 된 평화를 3주 전부터 어린이집(Child Care)에 보내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뿐이긴 하지만 아무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서 새로운 환경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험을 하기엔 아직 어린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

호주 부모들은 부부가 같이 일을 하는 경우 빠르면 생후 3개월 때부터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긴다. 비용은 비싸지만, 일을 하고 수입이 아주 많지 않다면 정부에서 거의 90%까지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이 많은 이 곳에서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국처럼 시부모나 친정부모에게 맡기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남편만 일을해서 먹고 살기도 쉽지 않은 환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아이를 가지는 것과 상관없이 계속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욕구 때문일 수도.

아무튼 임신 하고 입덧이 심해졌을 때부터 회사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만 전념했던 엄마 덕에 한번도 엄마와 오랜 시간을 떨어져본 경험이 없는 평화에게 이번 경험은 참 충격적일 것이다. 많이 힘드냐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뭐 아직 할 수 있는 말이 엄마 아빠 뿐이니.

처음엔 너무 어린데 부담을 주는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빨리 독립심을 키워주지 않으면 오히려 커서는 더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고 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는 중에 아내가 2학기부터 미국으로 가느라 중단했던 대학원 공부를 마저 하기로 결정을 했고, 나도 일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기로 결심했다.

처음 몇주는 부모나 아이나 힘들 것이지만 잘 견디면 금방 적응할 것이라는 주위의 조언도 있고 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해보기로 했다. 아침에는 엄마가 데려다 주고 오후에 데려올 때는 나도 따라나섰다. 엄마랑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울고불고 하는 것을 억지로 떼어놓고 오는게 너무 힘들어서, 모처럼 가지게된 자유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아내의 모습이 안스러웠다. 어린이 집 선생님이 전화해서 엄마가 떠난 뒤로 조금 지나서 잘 안정되었다거나 다른 아이들과 잘 놀고 있다거나 식사도 잘하고 낮잠도 잔다고 이야기 해주기도 해서 안심이 될 것도 같은데,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애한테 몹쓸 짓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어서 그랬나 보다.

한번은 아이가 엄마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하면서 매달리는 것을 억지로 떼어놓고 오더니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못견디겠다고 해서, 중간에 어린이집에 다시 찾아갔다. 얼굴을 보이면 오히려 안좋을 것 같아서 멀찍이서 망원경으로 잘 놀고 있는 것을 몰래 확인한 뒤에야 안심을 하고 돌아왔다.

사실 나는 잘 적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큰 걱정은 안했는데, 처음 몇번 데려갔더니 잘 놀다가 갑자기 엄마를 보고는 울면서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조금 마음이 안쓰럽긴 했다.

그러는 중에.. 두둥. 오늘은 아빠가 한번 데려다 주라는 아내의 부탁.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힘들어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빠가 혼자 데려다 주라는 것이었다.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내가 전에 엉겹결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는 증거를 들이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번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힘든 일(아이를 떼 놓고 오기)은 엄마를 시키고 좋은 일(데리고 오기)은 내가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오늘은 올들어 가장 추운, 그것도 5년만에 최저기온으로 내려간 날이다. 무려 영상5도. 여기 온도가 5도면 한국의 영하 20도나 마찬가지이다. 난방이 없는 집들이라 실내에선 입김이 날 정도고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오면 발이 시려서 바닥을 밟기가 힘들다.

이런 날씨에 꽁꽁 싸맨 아이들 데리고 차를 몰고 떠났다. 워낙 차타고 아빠랑 나가는 것을 좋아해서 가능 중에는 별 저항은 없었는데, 어린이집 주차장에 딱 도착하는 순간 주위를 살펴보고는 바로 “엉엉..” 하면서 작은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헉…

되돌아 갈까 고민을 하다가, 조금 더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차에서 내리게 해서 안고 놀이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선생님들과 일찍 온 아이들이 몇 명이 놀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눈물을 터뜨려면서 엉엉 우는 아이를 간신히 떼어놓고, 선생님한테 넘긴 후에 나오는데.. 문에 난 창으로 보니 내가 나간 쪽을 바라보면서 앉아서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핑그르르..

오는 내내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다.

어짜피 조금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과 잘 놀 것이고 밥도 잘 먹고 낮잠도 자고 시간을 보내겠지라고 생각해도 것참 마음이 허전하고 기분이 영 그렇다. 오늘은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을런가 모르겠다.

오늘 데리러 갈 때는 엄마는 먹이지 말라고 난리지만 평화가 무척 좋아하는 딸기 우유를 하나 사갈테다. 좋아하는 딸기우유를 먹으면서 만족해 하는 얼굴을 한번이라도 봐야 마음이 풀릴테니까.

Update: 조금 전에 평화를 데리러 갔더니 아이들과 놀다가 나를 보고는 활짝 웃으면서 달려왔다. 그 동안은 데리러 가면 아빠나 엄마 얼굴을 보고는 갑자기 울상이 되서 달려왔는데 오늘은 아주 기분 좋게 웃으면서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니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면서 갑자기 행복해졌다. 함께 마트에 가서 바나나 우유를 사주었더니 입 한번 안 떼고 집에 오는 내내 기분 좋게 먹는다.  저녁엔 오랜만에 오븐 구이 양념 치킨을 해먹으려고 양념된 닭도 사왔다. 나 먹을 과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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