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가 태어난지 4주가 지났다. 엄마 배속에서 힘겹게 나오는 모습을 본게 어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네.

호주 병원의 정책은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와 한시도 떨어뜨리지 않고 같이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성공적으로 모유 수유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엄마 배속에서 나오면 바로 엄마가 안게 해주고 잠시후에 소아과의사가 와서 초기 수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유를 마치면 잠시 검사대에 눞히고 몸무게를 재고 간단한 검사를 한다. 짧지만 처음으로 엄마랑 분리되서일까 하늘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산모가 샤워를 하는 동안 하늘이는 내가 안고 있었다. 정리를 마치고 18시간 가까이 있었던 분만실을 떠나서 신생아 병동으로 옮겼다. 아이는 따로 신생아실에 두지 않고 엄마 옆에서 함께 지내게 한다. 모유 수유를 위해서다.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다면 병원에서 먼저 분유를 주지는 않는다. 밤에는 간호사들이 수시로 와서 돌봐주기 때문에 아빠가 함께 있을 필요는 없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하늘이는 처음부터 모유 수유를 시작할 수 있었다. 평화 때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분유를 잔뜩 먹여두니 엄마 젖을 빨려고 하지 않아서 한 달이 넘도록 모유를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애를 먹였던 것과 다르게 하늘이는 순조롭게 모유 수유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늘이 이틀째 사진. 나올 때부터 손톱이 제법 길다했는데 하루도 안되서 결국 제 얼굴 한쪽에 자해를 해버렸다. 그래서 그 힘들다는 신생아 손톱깍기에 도전을 해야 했다.

막 태어나서는 3.36킬로였는데 이틀쯤 지나고 나니 몸무게가 빠져서 2.9킬로가 됐다. 아내는 출산때 출혈이 좀 있어서 이런 저런 검사하느라 3일 후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호주는 의료제도가 그럭저럭 잘 되어있는 편이다. 병원비는 0. 행정처리는 신생아 병동에서 알아서 했을테고 병원비를 낼 필요가 없으니 별다른 퇴원 수속은 없다.

집에 온 뒤에는 젖이 아무래도 부족한 듯 해서 분유를 함께 먹이는 혼합수유를 시작했다. 혼합 수유를 하다보면 유두혼동이 오기도 하는데 다행히 하늘이는 신경안쓰고 뭘 주든 잘 먹어서 다행. 2-3시간에 한번씩 젖이나 분유를 먹게 되면 나는 옆에서 노래를 불러줬다. "토실토실 아기 하늘이 젖달라고 꿀꿀꿀~"

집에 도착해서 아기침대에 처음 누워서. 살이 빠져서 얼굴이 갸름해졌다.

집에 온 후에도 병원에서 보낸 midwife들이 집을 방문해서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몸무게는 잘 늘고 있고 모유수유는 잘 하고 있는지 황달기는 없는지 등등을 점검해주고 간다. 초기에 살짝 있던 황달기는 며칠이 지나서 사라졌고 몸무게도 서서히 늘고 있어서 안심.

평화는 갑작스런 동생의 등장에 살짝 긴장. 그래도 동생을 밀어내거나 해꼬지 같은 것은 안하고 이뻐해주고 좋아한다.

하늘이가 도착한 날 평화. 입 가에 묻은 것은 하늘이 0살 생일 케이크.

태어난 지 열흘째. 분유를 같이 먹으니 슬슬 몸무게가 늘기 시작해서 태어날 때 몸무게를 회복했다. 나는 밤에도 2-3시간에 한번씩 일어나서 하늘이 분유 타서 먹이고 트림 시키느라 수면 리듬이 엉망이 되서 온 종일 헤롱헤롱.

태어난지 15일째. 한국에서 오신 외할머니와 즐거운 시간. 처음엔 눈도 잘 못뜨더니 보름 지났다고 소리가 들리면 고개도 휙휙 돌리고 눈도 땡그라니 뜨고 쳐다본다.

발 사진도 찍어보고.

이제 4주째. 몸무게는 거의 4킬로 가까이 됐다. 얼굴도 살이 올라 제법 통통해지고.

하늘이를 안고 있는 평화. 동생이 생긴게 마냥 신기한가보다.

하늘이 침대에 함께 누워서. "오빠 나 이뻐?". "이히히…".

이대로 행복하고 즐겁게 서로 돌보고 의지하면서 잘 컸으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다. 어린이집에 가려고 옷을 입히고 모자를 씌웠더니 엄마도 모자 쓰라고 한다. 아직 말은 제대로 못하지만 자기 의사는 충분히 표현한다.

 

이름: 이평화

별명: 뼝아리

나이: 두살 반하고 몇 주

주특기: TV보면서 춤추기. 일하는 아빠 손 잡아 끌고 놀아달라고 조르기. 사고 치고 애교 떨기. 아빠 아이폰으로 아무데나 메일 보내기.

이제 네 달만 지나면 오빠가 된다. 좋은 시절도 얼마 안남았다.

덥다. 수십년 만에 가장 더운 11월이라고 한다. 예년같으면 12월은 되야 이런 날씨가 시작될텐데 아직 늦봄인 11월 초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왔다. 시드니는 지난 일요일에 최고기온 41도를 기록했다. 호주 중심부 아웃백에서 불어오는 거대한 열풍이 몰아친 탓일 것이다. El Nino 탓인지 지구 온난화 탓인지,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덥다. 이러다가 브리스번이 아열대 기후가 아니라 열대 기후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더운 것 까지는 좋은데 가끔 비라도 흠벅 쏟아졌으면 좋겠다. 단, 우리 가족 캠핑 가는 날은 빼고.

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처음으로 평화와 함께 캠핑을 다녀왔다. 편안하게 리조트나 빌라에서 지내다 오는 것도 좋겠지만 역시 가족 여행의 재미는 캠핑이 최고다. 도심지를 떠나 자연에서 지내는 여유, 땀흘려 친 텐트 속에서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는 즐거움, 야외에서 해먹는 식사의 맛, 부시시한 얼굴로 산과 바다를 누비며 자연 속에서 뒹구는 시간들 등등. 게다가 저렴한 비용까지. 캠핑만큼 짜릿한 가족여행도 없을 듯 하다.

가족이랍시고 달랑 셋 뿐이긴 하지만, 이제 겨우 두살이 지났고 아직 몇단어 밖에 말할 줄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캠핑을 떠나는 것은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내랑 둘이 간다면야 아웃백에 나가 침낭만 펼쳐 놓고 별빛 아래서 잠을 자든 야생동물을 피해서 차 지붕 위에 텐트를 치고 자든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아직 커뮤니케이션도 잘 안되는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이라 하드코어 캠핑은 힘들다. 차로 1-2시간 거리로 갈 수 있는 곳에 수십개의 다양한 캠핑장이 있지만, 우리가 선택한 것은 골드코드트의 메인 비치에 있는 메인 비치 투어리스트 파크였다. 사실 골드 코스트 도심지에 가까이 있는 곳이라 그다지 자연 속에 나온 느낌은 덜하지만 그래도 수십년 된 전통있는 캠핑장이고 시설도 깔끔하게 되어있고, 무엇보다도 걸어서 1분이면 바다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 사실 집에서 차로 25분이면 간다. 여차하면 집에 와서 필요한 물건을 다시 챙겨 갈 수도… 아무튼 캠핑 초보 가족이 가기에는 적당한 곳이다.

작년에 알디에서 세일할 때 잽싸게 사두었던 싸구려 텐트와 틈틈히 구입한 각종 캠핑 장비들, 튼튼하고 편안한 침구와 물놀이 장비들, 거기에 먹을 거리를 챙기고 보니 넉넉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차 트렁크가 가득찬 것은 물론이고 앞 좌석 하나까지 짐이 가득 쌓였다. 뭐, 없어서 고생하거나 아쉬워 하는 것보다는 필요없어도 일단 가지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열심히 실어댄 탓일지도. 그래도 대형 텐트는 아니라서 차 지붕에 짐을 올리거나 트레일러를 다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캠핑을 위한 짐을 가득 채운 트렁크. 이게 전부가 아니라 앞 좌석 하나를 바닥에서부터 가득 채울만큼이 더 있다.

아침 일찍 평화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내와 열심히 짐을 싸고 준비를 마친 뒤 평화가 낮잠에서 깰 즈음에 다시 픽업을 해서 캠핑장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2시 반쯤 도착하면 30분 안에 텐트를 친 뒤에 바다로 나가서 뒹구는 것이었다. 하지만 텐트를 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텐트 폴을 연결하고 끼워넣는 것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가장 힘든 일은 펙(pec)을 박는 것. 펙 망치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깜빡하고 망치를 챙기지 못했다. 헉! 캠핑장의 바닥은 바닷가라 모래가 많고 제법 단단하다. 그것을 손으로 눌러 넣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망치를 가지러 집에 다녀올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던 끝에 전기줄을 감아 놓았던 나무 조각을 사용하기로 했다. 단단하지도 않고 잡기도 편하지 않지만 그래도 세게 두두르면 대충 펙이 박힐 듯 했다. 하지만 왠걸, 하나 박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싸구려 텐트 세트라 그런지 어떤 펙은 약해서 잘못 치면 그냥 휘어져 버린다. 게다가 위치를 잘못잡으면 기껏 박아넣었는데 힘을 주면 맥없이 빠져나온다. 쭈그리고 앉아서 20여개의 펙을 삽질을 해가며 모두 박아 넣어야 했다. 그 와중에 자유의 몸이 된 평화는 이리 저리 다니면서 물건에 손을 대고 집어 던지고 옆 사이트로 도망가기 바빴다. 결국 평화를 차에 가두고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다. 텐트 내부에 3개의 방을 달고 바닥을 연결하고 대충 기본 작업을 마친 뒤에 마지막으로 에어매트리스를 불어 넣어 집어넣어야 할 차례가 됐다. 텐트 크기를 확인하고 대충 그에 맞게 퀸 사이즈의 에어 매트리스를 구입했는데, 왠걸 막상 바람을 가득 채워넣고 각 방에 집에 넣으려하니 이게 들어가지가 않는다. 생각보다 매트리스 크기가 커서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끙끙 대며 간신히 우겨넣고 나서 가져온 테이블과 의자, 짐 등을 풀어 놓고 전기를 연결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벌써 두시간 반이나 흘렀다. 헉헉… 30도가 넘는 뜨거운 골드코스트 햇볓아래서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니 완전 녹초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엉성하긴 하지만 텐트를 쳐 놓고 나니 기분은 좋아졌다. 처음으로 야외에 나와서 뭔가 희한한 일을 하고 있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평화도 역시 흥분했다.

대략 완성한 텐트. 10인용이 넘는 캔버스 구조의 다른 대형 텐트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그래도 나름 6명은 낑겨 잘 수 있는 3개의 방과 거실을 가진 넉넉한 공간이다.

문제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넉넉한 쉐이드 따위가 없다는 것. 아침부터 내리 쬐는 태양 덕분에 텐트 안은 한 낮에는 싸우나가 된다. 해가 져가며 그늘이 질 무렵은 되야 그나마 견딜만 하다. 4시 반이면 해가 뜨고 6시면 이미 뜨거운 햇빛 때문에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아침에는 다른 편에 세워둔 차 그늘에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해야 하기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은성과 평화.

첫날 저녁은 캠프 키친에 가서 준비해온 닭불고기를 구워서 식사를 했다. 밥을 해서 가져오기로 하고 아침에 밥을 지어놨는데 깜빡하고 챙겨오는 것을 잊었다. 결국 골드코스트의 한국 식품점을 찾아서 햇반을 사서 해결해야 했다. 어디 산속으로 갔었다면 저녁도 못먹을 뻔 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니 기온은 내려가고 잘 무렵엔 서늘해져서 그래도 힘들지 않게 잘 수 있었다. 처음으로 에어 매트리스에 누워서 자는게 어색해서 한참을 이리 저리 뒹굴어야 했던 것을 빼면 편안한 밤이 었다.

둘째 날은 아침을 먹고 바로 캠프장 내의 수영장으로 향했다. 계획은 오전 수영장에서 놀고 오후는 바다에 나가 즐기는 것이었다. 평화가 막 돌이 지난 때였던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평화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었는데 그때는 아직 물이 무서운지 튜브나 보트에 혼자서 타지도 못하고 엄마한테만 꼭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였한 2살하고 2개월. 수영장 물놀이에 푹 빠져서 신나게 물 속에서 노는데 성공했다.

처음엔 어린이를 위한 얕은 풀에 들어가서 놀았는데 평화는 물 속에 들어온 것 자체가 즐거운지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좋아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진작에 데리고 수영장에 갈 걸 그랬나?

물에 적응 한 후에는 본격적인 튜브 타기 도전. 작년엔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않던 튜브에 이번엔 용감하게 들어가더니 자기 키를 한참 넘기는 깊은 물에서도 무서워 하지 않고 신나게 발장구를 치면서 놀았다. 자기 힘으로 튜브에 잘 매달려 있으니 데리고 놀기도 한결 수월. 가끔 세게 밀어주거나 혼자 힘으로 움직여 보도록 떼어놓아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호주에서 살려면 수영은 기본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빨리 수영을 배우게 해주는게 중요하다. 관광객들이 아니라 현지 사람들과 함께 바다에 투어를 나가면 스노클링 할 때 구명조끼를 주는 법이 없다. 다들 알아서 깊은 물에서도 헤엄치며 잘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애기들은 어떻게 물에서 데리고 노는지 관찰을 해보면 대부분 그냥 맨 몸으로 물 속에 뛰어드는 것부터 시킨다. 물론 아빠나 엄마가 잡아줄 것을 알기에 과감하게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용감해 보인다. 평화는 일단 튜브를 낀 채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연습부터 시켰다. 일단 물놀이가 즐겁고 무섭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줘야 할테니까. 어쨌든 평화 수영은 내가 가르쳐야 할 듯 하다. 말이 제대로 되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시작해 봐야겠다.

두 시간 가까이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 뒤에 잠시 더위를 식히려고 에어콘을 빵빵하게 틀고 차를 타고 바닷가를 달렸다. 그러는 중에 평화가 일찍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깬 데다 평소와 달리 넓은 공간에서 신나게 뛰놀고 튜브에 매달려 물에서 몇시간을 놀아서 지쳐버린 탓이라 낮잠 시간이 빨라진 것 같다.

날은 점점 더 더워지고 물에서만 계속 있기는 힘들어서 다음 코스인 시원한 냉방이 되는 쇼핑센터로 향했다. 캠핑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초대형 쇼핑센터인 Australia Fair를 찾았다. 주차가능대수만 2000대가 넘는 골드코스트의 유명 쇼핑센터이다. 시원한 쇼핑센터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달아오른 몸의 열기를 충분히 식힌 뒤에 이번에는 바다로 향했다.

우리가 지냈던 메인 비치는 30킬로 가까이 이어진 골드 코스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변이다. 다른 곳에 비해서 사람이 적어 한적해서 그런지 서핑이나 카이트 보드(kite board)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하늘엔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해변의 모래는 밀가루처럼 곱고 부드럽다. 이런 해변이 여기서 부터 시작해서 30킬로 가량 이어져있다. 골드 코스트는 호주 최대의 휴양지이다. 호주 사람들이 휴가 때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 가장 많은 신혼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다. 사실 우리 부부도 이 곳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그러고 보면 여기 저기 돌고 돌아서 결국은 신혼여행지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 동안 학교 다니느라 바빴던 엄마, 일한다고 잘 놀아주지도 못한 아빠가 온 종일 함께 있으면서 신나게 놀아주니 평화 기분이 최고였다. 거칠 것 없이 넓은 모래사장에서 맘 것 뛰노느라 즐거운 평화의 모습.

평화에겐 해변에서 모래장난 하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

가장 재밌는 것은 밀려오는 파도에서 노는 것. 처음 바다에 나왔을 때는 파도가 오는 것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하고 주저하더니 한번 물에 발을 담근 뒤에는 밀려 들어가는 파도를 쫒아 뛰어갔다가 다시 뛰어 나오기 바빴다. 발에 물이 닿기만 해도 신나서 소리를 지르며 펄쩍 펄쩍 뛰어댄다.

나는 놀다 지쳐서 비치의자에 누워서 뻗어있었지만 평화는 오후 내내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다 파도랑 놀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져갈 무렵에서야 겨우 물에서 빠져나와 다시 캠핑장으로 향했다.

텐트에서 지내는 것이 다 좋긴 한데 항상 밖으로 나가서 뛰놀고 싶어하는 평화를 붙잡아 둘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집이라면 밖으로 못나가게 문을 닫아두면 되지만 열려 있는 텐트만 있는 캠핑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틈만 나면 빠져나가 맨발로 여기 저기 달려나가는 통에 아내와 나 중 한 사람은 항상 평화를 감시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평화를 붙잡아 두는 방법의 하나는 가져간 노트북으로 어린이용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인데 사방이 신기한 것으로 가득찬 이 곳에서는 그것도 잘 통하지 않는다.

잘 꼬셔서 텐트 안에서 놀게 하려고 했지만 나가고 싶어서 아쉬움에 가득 차 있는 평화.

셋이서 함께 찍은 사진 하나 쯤은 남겨야 했기에 사진기와 함께 삼각대를 가져갔다. 문제는 삼각대는 이미 평화의 장난감이라는 것. 왜 어린이들은 어린이용 장난감보다 부모의 물건을 가지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세워둔 삼각대를 들고 놀이터로 달려 갔다가 엄마한테 잡혀서 돌아오는 평화의 모습.

간신히 삼각대를 뺐어서 사진을 찍긴 했는데 평화는 그만 삐져버렸다. 왜 어른 들은 자기 장난감을 뺐는지 모르겠다는… 아무튼 간신히 남긴 가족캠프 증거 사진 한장.

저녁은 싸우스포트의 골드코스트 강가에 있는 그릴&시푸트 식당인 아웃백 잭(Outback Jack)으로 갔다. 이름이 비슷하긴 하지만 미국에서 만든 호주식 레스토랑인 아웃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온 종일 풀 코스로 뛰어 노느라 지쳐버린 탓에 모두 일찍 잠들었다.

마지막 날 아침은 일찍 식사를 마치고 일찍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날이 더워진 뒤에 짐을 정리하려면 그것도 또 고생이라 가능한 덥기 전에 텐트를 해체하고 짐을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였다.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와서 이번에는 산으로 향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바다에서 또 놀기에는 힘이 딸리고 해서 골드코스트 힌터랜드에 있는 탬버린 마운틴을 넘어서 뷰데졋을 거쳐서 집으로 가는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탬버린 마운틴은 종종 찾는 가까이에 있는 산이다.  경치도 좋고 이쁜 카페와 전시장 등이 있는 카페거리도 있어서 가끔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찾으면 좋다. 

산 정상의 열대우림 지대를 지나서 서쪽으로 넘어가다 중턱쯤에 있는 체다 크릭에 들렀다. 그동안 비가 좀 많이 왔으면 계곡 물도 많아서 rock pool에서 수영도 하고 즐길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물의 양이 적어서 계곡까지 내려가지는 않고 그냥 산 길을 따라서 산책만 하다가 돌아와야 했다.

계곡에 가든 말든 상관없이 새로운 곳에서 맘 것 뛰어놀 수만 있으면 마냥 행복한 평화.

시원한 숲 속에서 즐겁게 놀던 평화를 데리고 돌아오려고 했더니 안 떠나려고 완강히 거부한다. 조금 더 있으면 바닥에 드러누울 태세길래 그냥 들쳐메고 나왔더니… 많이 아쉬웠나 보다. 집에 돌아가려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 어디 놀러갔다가 부모님이 집에 가자고 하면 "여기서 더 놀면 안되냐"고 떼쓰면서 울었던 기억이…

대충 이렇게 해서 평화와 함께 떠난 첫 캠핑을 마쳤다. 집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조금 넘었다. 날도 더운데 그냥 집에서 있으라고 하기엔 미안하고 해서 얼마전에 구입해둔 밥더빌더 어린이용 풀을 꺼내 앞마당에 설치해 주었다. 넓지는 않아도 평화가 들어가서 놀기엔 그만인 듯. 바다를 떠나야 했던 아쉬움은 대충 접고 오후 내내 풀에서 실컷 놀며 즐거워 했다.

쉽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던 첫 가족 캠핑은 대충 이렇게 마무리. 이제 올해 마무리 해야 할 바쁜 일들을 열심히 끝내고 본격적인 여름 휴가를 떠나야겠다. 다음엔 케언스까지 1700킬로를 해안을 따라 가며 하는 캠핑에 도전해볼까?

뒷뜰의 토비농장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커피의 맛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한 커피열매를 직접 수확해서 어찌 어찌 해서 커피를 뽑아 마시기까지의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은 험난한 과정 얘기다. 

 

처음 할 일은 잘 익은 커피 열매 수확하기.

지난 겨울 폭풍에 쓰러져 가는 커피나무를 정성스레 세워주고 붙잡아 매주고 하면서 지금까지 키워온 덕에 아주 잘 익은 커피 열매들이 한 가득 열렸다.

점심먹고 평화랑 함께 수확작업 시작. 인터넷에서 커피 수확하는 정보를 좀 찾아보니 잘 익은 커피를 구분하는 방법이 나와있다. 대충 색을 비교해서 너무 익은 것과 덜 익은 것은 제외하고 빨갛게 잘 익은 놈들만 정성스레 따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알씩 조심스레 땄지만 나중에는 귀찮아서 손으로 주르륵 훝어내렸다. 땡볕에서 커피 수확하는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커피농가는 정당한 댓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무 아래 쪽은 아직 설익은 것들은 좀 더 익도록 놔두고 중간부터 위쪽으로 1/3가량만 수확했다. 그 중 1/3은 뜯어내다가 바닥에 흘리고, 일부는 평화가 여기저기 집어던지고 해서 대충 한 바가지 정도의 커피열매를 확보했다.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사무실 바로 앞에서 자라는 커피나무. 

 

커피수확 노가다에 얼떨결에 동원된 평화. 며칠간 고열로 고생했는데 이젠 좋아졌다.

 

수확된 커피열매 중에서 부실한 놈을 가려낼 차례다. 물을 부어놓으면 빈약한 것들과 너무 익은 것들, 잘 익지 않은 것은 떠오른다. 떠오른 놈들은 모두 제거한다.

 

수확한 커피 열매. 아직 부실한 것들도 섞여있다.

 

물을 부어보면 션찮은 것들은 다 떠오른다. 아깝지만 모두 제거한다.

 

이제 껍질과 과육을 제거할 차례. 이게 상당한 중노동이다. 잘 익은 것은 한 손으로 살짝 집어주면 분리되기는 하지만 어떤 것들은 아직 뻑뻑해서 손으로 까줘야 한다. 보통 열매 하나에 두 조각의 빈이 나오는데, 덩치 큰 것들은 희한하게도 세 개가 나오기도 한다. 커피과육은 얼마 안되고 빈약하긴 하지만 먹어보면 제법 맛있다. 달착지근한게 자꾸 땡긴다.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어서 먹다보면 끊기가 힘들어 질 수도 있다고.

 

한 시간 넘게 분리작업을 거쳐서 나온 아직 끈적한 상태의 커피 빈. 

 

물로 한번 씻어줬지만 표면은 아직 끈적끈적 하다. 이걸 잘 건조시킨 후에 표면에 딱딱하게 눌어붙은 것들을 한번 더 제거해줘야 한다. 오후부터 햇볓에 말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끈끈한게 남았다. 하루쯤 더 건조시키고 표면에 붙은 것들을 부벼서 제거해주면 드디어 생두가 된다.

휴. 갈길이 멀다. 과연 이렇게 해서 언제쯤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질지 궁금궁금.

나머지 작업은 내일 계속.

© 2017 Toby's Epril Suffusion theme by Sayontan Sin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