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뻥 뚫려버린 느낌이다

이제 20개월 된 평화를 3주 전부터 어린이집(Child Care)에 보내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뿐이긴 하지만 아무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서 새로운 환경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험을 하기엔 아직 어린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

호주 부모들은 부부가 같이 일을 하는 경우 빠르면 생후 3개월 때부터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긴다. 비용은 비싸지만, 일을 하고 수입이 아주 많지 않다면 정부에서 거의 90%까지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이 많은 이 곳에서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국처럼 시부모나 친정부모에게 맡기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남편만 일을해서 먹고 살기도 쉽지 않은 환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아이를 가지는 것과 상관없이 계속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욕구 때문일 수도.

아무튼 임신 하고 입덧이 심해졌을 때부터 회사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만 전념했던 엄마 덕에 한번도 엄마와 오랜 시간을 떨어져본 경험이 없는 평화에게 이번 경험은 참 충격적일 것이다. 많이 힘드냐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뭐 아직 할 수 있는 말이 엄마 아빠 뿐이니.

처음엔 너무 어린데 부담을 주는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빨리 독립심을 키워주지 않으면 오히려 커서는 더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고 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는 중에 아내가 2학기부터 미국으로 가느라 중단했던 대학원 공부를 마저 하기로 결정을 했고, 나도 일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기로 결심했다.

처음 몇주는 부모나 아이나 힘들 것이지만 잘 견디면 금방 적응할 것이라는 주위의 조언도 있고 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해보기로 했다. 아침에는 엄마가 데려다 주고 오후에 데려올 때는 나도 따라나섰다. 엄마랑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울고불고 하는 것을 억지로 떼어놓고 오는게 너무 힘들어서, 모처럼 가지게된 자유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아내의 모습이 안스러웠다. 어린이 집 선생님이 전화해서 엄마가 떠난 뒤로 조금 지나서 잘 안정되었다거나 다른 아이들과 잘 놀고 있다거나 식사도 잘하고 낮잠도 잔다고 이야기 해주기도 해서 안심이 될 것도 같은데,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애한테 몹쓸 짓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어서 그랬나 보다.

한번은 아이가 엄마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하면서 매달리는 것을 억지로 떼어놓고 오더니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못견디겠다고 해서, 중간에 어린이집에 다시 찾아갔다. 얼굴을 보이면 오히려 안좋을 것 같아서 멀찍이서 망원경으로 잘 놀고 있는 것을 몰래 확인한 뒤에야 안심을 하고 돌아왔다.

사실 나는 잘 적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큰 걱정은 안했는데, 처음 몇번 데려갔더니 잘 놀다가 갑자기 엄마를 보고는 울면서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조금 마음이 안쓰럽긴 했다.

그러는 중에.. 두둥. 오늘은 아빠가 한번 데려다 주라는 아내의 부탁.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힘들어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빠가 혼자 데려다 주라는 것이었다.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내가 전에 엉겹결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는 증거를 들이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번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힘든 일(아이를 떼 놓고 오기)은 엄마를 시키고 좋은 일(데리고 오기)은 내가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오늘은 올들어 가장 추운, 그것도 5년만에 최저기온으로 내려간 날이다. 무려 영상5도. 여기 온도가 5도면 한국의 영하 20도나 마찬가지이다. 난방이 없는 집들이라 실내에선 입김이 날 정도고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오면 발이 시려서 바닥을 밟기가 힘들다.

이런 날씨에 꽁꽁 싸맨 아이들 데리고 차를 몰고 떠났다. 워낙 차타고 아빠랑 나가는 것을 좋아해서 가능 중에는 별 저항은 없었는데, 어린이집 주차장에 딱 도착하는 순간 주위를 살펴보고는 바로 “엉엉..” 하면서 작은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헉…

되돌아 갈까 고민을 하다가, 조금 더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차에서 내리게 해서 안고 놀이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선생님들과 일찍 온 아이들이 몇 명이 놀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눈물을 터뜨려면서 엉엉 우는 아이를 간신히 떼어놓고, 선생님한테 넘긴 후에 나오는데.. 문에 난 창으로 보니 내가 나간 쪽을 바라보면서 앉아서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핑그르르..

오는 내내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다.

어짜피 조금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과 잘 놀 것이고 밥도 잘 먹고 낮잠도 자고 시간을 보내겠지라고 생각해도 것참 마음이 허전하고 기분이 영 그렇다. 오늘은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을런가 모르겠다.

오늘 데리러 갈 때는 엄마는 먹이지 말라고 난리지만 평화가 무척 좋아하는 딸기 우유를 하나 사갈테다. 좋아하는 딸기우유를 먹으면서 만족해 하는 얼굴을 한번이라도 봐야 마음이 풀릴테니까.

Update: 조금 전에 평화를 데리러 갔더니 아이들과 놀다가 나를 보고는 활짝 웃으면서 달려왔다. 그 동안은 데리러 가면 아빠나 엄마 얼굴을 보고는 갑자기 울상이 되서 달려왔는데 오늘은 아주 기분 좋게 웃으면서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니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면서 갑자기 행복해졌다. 함께 마트에 가서 바나나 우유를 사주었더니 입 한번 안 떼고 집에 오는 내내 기분 좋게 먹는다.  저녁엔 오랜만에 오븐 구이 양념 치킨을 해먹으려고 양념된 닭도 사왔다. 나 먹을 과자도..

8 Comments

blissJune 12th, 2009 at 10:49 am

마더라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김혜자씨가 인터뷰 자리에서 원빈을 보더니 이 말을 했어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픈 아들”이라고요. 부모에게 자식은 늘 그런 존재인 듯해요. 아마 평화는 자기 나름대로 견디고 이기는 법을 배우는 중이리라 믿어요. ^^

ShawnJune 12th, 2009 at 11:41 am

제 아들녀석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가 생각나네요.
맞벌이를 하는 지라 보내긴 해야 하는데, 제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 어린이집 입구에서 엉엉 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좀 지나면 잘 적응해서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TobyJune 12th, 2009 at 11:57 am

bliss/ 고맙습니다.
Shawn/ 직접 그 모습을 보고 오니까 이건 말로 듣던 거랑은 느낌이 다르더군요. 애기도 적응해야 겠지만 부모도 적응이 필요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영회June 12th, 2009 at 3:02 pm

가슴아프겠구만… 근데 저항을 왜 해?

>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TobyJune 12th, 2009 at 4:30 pm

영회/ 밑에 보면 이유가 나와 있자나.

> 사실 힘든 일(아이를 떼 놓고 오기)은 엄마를 시키고 좋은 일(데리고 오기)은 내가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MaxJune 12th, 2009 at 8:09 pm

부모는 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나 봐요.
자식이 친구를 더 찾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느끼세요… 이순간을… ^^*

KevinJune 14th, 2009 at 7:51 pm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존경합니다. :)

hangumJune 23rd, 2009 at 4:07 pm

둘째를 곧 보내야할텐데.. 벌써부터 고민되네요. 귀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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