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kiva.org 를 통해서 가난한 나라의 기업가(entrepreneurs)들에게 작은 돈을 빌려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가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힘으로는 일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작은 종자돈만 있다면 그것으로 자영업이나 마이크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확장할 수 있고, 그리고 1-2년 내에 그 빌린 돈을 다 값을 수 있을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힘과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 계속 이어지는 빈곤한 삶의 절망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일이다.

가난한 나라의 빈민들의 문제는 그것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힘든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방치되어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넉넉하게 그들을 돕지도 못할 뿐더러, 자신의 힘으로 빈곤한 삶을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최소한의 기회도 잘 제공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한국 돈으로 몇십만원에서 백만원 정도의 돈만 있어도 자기 힘으로 이익을 계속 낼 수 있는 작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은 이미 충분한 담보가 있거나 아니면 이미 돈이 넉넉한 사람들에게 더 돈을 빌려주는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안전하고 편하니까. 그래서 금융기관으로 부터 대출을 받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고리대금업자나 사채꾼 들에게 돈을 빌리게 된다. 그러면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이자가 따라 붙고,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고리대금업자들의 배만 불려줄 뿐 자신의 삶이 나아지게 할만한 기회를 찾기 힘들다.

모든 재정문제가 다 그렇지만, 특히 그들은 그래서 break through가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일방적으로 제공해주는 원조는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받은 것을 다 써버리면 그것으로 다시 원점일 뿐이다. 그래서 생선을 주는 대신 낚시 도구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부유한 나라의 일부 대책없는 저소득층처럼 돈이 생기면 개념없이 써버리는 대신, 그 주어진 돈으로 최선을 다해서 이득을 내서 융자금도 값고 자신의 삶을 계속 향상시킬 수 있도록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키우는 데 노력한다.

이미 이와 같은 사실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을 통해서 잘 입증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소액 대출은 부자들에게 제공되는 대출보다 훨씬 회수율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라민 은행의 원금회수율은 98%이다. 원금 회수율이 일반 금융기관보다 높아서 인도 같은 경우는 대형 금융기관들이 소액대출 시장에 마구 진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난다. "조금만 도와주면 벌떡 일어날 수 있을텐데…"

작은 종자돈이 한 사람의, 한 가정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고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Kiva.org는 내가 본 최고의 Web 2.0 사이트이다. 전세계에 걸쳐서 이런 작은 사업비용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정보를 모으고 사이트에 공개하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그들에게 작은 돈을 빌려주도록 하는 방식이다. 모든 것이 다 온라인을 통해서 일어난다. 융자가 필요한 사람들과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만나는 구조이다. 물론 대출을 받을 사람이 직접 자신의 정보를 올리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현지에서 활동하는 단체나 기관이 미리 사전 심사하고 조사해서 선별된 사람의 정보를 Kiva.org 사이트에 올려준다. 이들을 필드 파트너라고 한다. 그러면 Kiva.org의 회원들이 그들의 필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각자 원하는 만큼 돈을 빌려줄 수 있다. 보통 한 사람에 대해서 여러 명의 회원들이 빌려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원하는 금액이 모두 차면 그들에게 돈이 전달되어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정해진 기간동안 매달 원금을 상환한다. Kiva.org를 통해서 일어나는 대출도 원금 회수율이 98% 이상이다. 사실 필드 파트너들은 각자 정해진 원칙하에서 운영경비를 위해서 일정한 이자를 받는다. 이자가 전혀 없다면 오히려 돈을 빌린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할 동기를 잃을 수도 있다. 물론 Kiva.org는 필드 파트너들이 과도한 이자나 수수료를 받는지 항상 감시하고, 이를 온라인에 항상 공개한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기간(보통 1년에서 2년이다)동안 모든 원금이 다 회수가 되면 그 돈이 다시 Kiva.org 회원의 크레딧으로 들어온다. 돈을 빌려준 회원은 이 돈을 다시 가져와도 상관없다. 하지만 보통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서 빌려준다. 원한다면 Kiva.org의 운영팀을 위해서 기부할 수도 있다. 회원이 제공한 돈은 100%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Kiva.org 자체는 별도의 후원자들을 통해서 들어온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온라인에선 이미 구글, Paypal, MS와 같은 많은 기업들이 기술과 결재를 포함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후원하고 있다.

 

오래 전에 Kiva.org를 처음 알게 되고 회원으로 가입해서 처음 돈을 빌려준 사람은 캄보디아의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생선을 파는 한 아주머니였다.  그 아줌마는 1000불을 요청했는데, 용도는 작은 중고 밴을 하나 사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부둣가에가서 생선을 직접 사서 그것을 리어카에 싣고 시장까지 먼거리를 직접 끌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생선은 신선하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많이 팔리지 못할테니 이윤이 적게 남을 것이다. 날이라도 더워서 생선이 빨리 상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빠르게 운송할 수단인 작은 차가 하나만 있으면 신선한 생성을 제때에 시장에 팔 수 있어서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고, 생선을 파는 비즈니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이트에 올라온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진을 보았다. 바구니 몇 개에 생선을 담아서 판매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처음 가입하면서 지불해둔 $100을 모두 그 아주머니 계좌에 넣었다. 기본적으로는 한 사람에게 최소 $25씩 융자해줄 수 있다. 나를 포함해 20명 정도의 사람에 의해서 원했던 돈이 모두 채워졌고, 그리고 그것으로 낡은 차를 산 아주머니는 그 뒤로 일년간 정말 열심히 일해서 필드 파트너가 요구하는 이자를 포함해서 내가 빌려준 모든 돈을 다 갚았다. 매달 나눠서 갚도록 되어있는데 단 한차례도 연체한 적이 없다. 캄보디아의 물가를 생각한다면 그 돈은 적지 않은 돈일 텐데 한번도 빠지지 않고 그것을 다 갚아나가려고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을까. 그리고 돈을 다 갚고 나면 그만큼의 수입을 가정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돈을 빌리기전에 하루 수익은 $12.5불이었다고 한다. 한달 해봐야 40만원 정도 겨우 버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필드 파트너의 리포트를 보면 알겠지만 Kiva.org를 통해서 빌린 돈으로 밴을 사고 나서 비즈니스가 잘 되어서 매달 $84불의 융자금을 값는데 부담이 없을만큼 수익이 증대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돈을 조금씩 더 넣어가면서 지금까지 8명정도의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돈을 값으면 바로바로 Kiva.org의 크레딧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줄 수 있다.

 

내일 모레면 크리스마스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기독교인의 종교행사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크리스마스는 그 기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진지 오래다. 지금은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 받으며 돈을 펑펑 쓰는 날일 뿐이다. 백화점과 쇼핑센터만 신나는 때이다. 자신을 위해서 지름신을 반갑게 맞아도 덜 부담이 드는 때이기도 하다. 또는 친구나 연인, 가족들과 연말을 겸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는 중에 조금만 아껴서 단 $25 이라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삶과 인생을 변화시키는데, 빈곤과 가난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도록 사용할 마음이 있다면 kiva.org를 찾아서 회원으로 가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 절시히 작은 돈이지만 큰 변화를 줄 수있는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서 “Lend”버튼을 눌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면 일년여 동안 필드 파트너의 리포트와 그들의 상환보고를 보면서 그들의 삶이 더 나아져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Kiva.org에 가입하고 결재하고 돈을 제공할 사람을 선택하는 방법은 http://www.internetmap.kr/841 을 참조하기 바란다. Kiva의 커뮤니티에 가면 여러 종류의 그룹들이 있다. 지역이나 나라별 그룹도 있다. 한국 그룹은 100명이 겨우 넘는다. 인구가 한국의 절반도 안되는 호주도 1600명쯤 되는데 말이다. 분발했으면 좋겠다.

참, 대출에 대해서 이자는 제공되지 않는다. 소액이라도 이자를 지급해줄 방법은 있지만 전세계에 걸쳐서 돈이 오고 가는 일이라 수익이 발생하면 세금 문제가 매우 매우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Kiva.org에 참여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고 무이자 융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보람을 원금에 덧붙여서 돌려받을 수 있기에 이만한 투자도 없는 것 같다.

내 블로그는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줄곳 한 서버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고객의 외부 자료교환용 서버가 필요하다고 해서 실리콘벨리의 한 ISP에 셋업해주었는데, 그 때부터 서버의 한 귀퉁이 빌려서 쓰기 시작했고, 이제 거의 6년이 다 되간다. 그러던 중에 오늘 처음으로  정든 서버를 떠나서 새로운 서버로 이전하게 되었다. 기존 서버가 6년 동안 업그레이드 한번 안한 구형인데다가 하드 용량도 작아서 가끔 시스템 파티션이 가득 차면서 서버가 먹통이 되는 일이 일어난다. 내가 관리하는 서버가 아니라서 고객사의 담당자가 ISP에 요청해서 다시 정리하고 시작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이제 좀 불편하다.

게다가 여유가 생기면 블로그를 php+mysql을 쓰는 워드프레스에서 내가 직접 만들려고 하는 자바환경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그럴려면 최소한 넉넉한 메모리라도 보장이 되야 할테니 내 블로그 빼고는 주로 ftp 서버로 사용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기존 서버로는 역시 무리다. 그래서 며칠 전에 서버가 다시 먹통이 된 김에 아예 새로운 서버로 옮겨버렸다.

다행이 블로그 DB나 소스는 매일 다른 서버로 백업해 두고 있어서 대부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었는데, 일 단위로 백업을 하다보니 마지막 날 남겨진 몇 개의 코멘트는 복구가 안됐다. 그분들께는 죄송…

새로 설치하면서 DB 테이블의 데이터를 살펴보던 중에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예전에 블로그에 와서 글을 남기던 한 사람이 최근에 다른 아이디로 슬며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워드프레스와 플러그인이 꼼꼼하게 사용자 정보를 남겨둔 덕분이다. 흠흠.. 나는 워드프레스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이메일만 넣어주면 익명으로 글을 남기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메일이야 얼마든지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가끔 다른 사람인 척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세 번이나 이름을 바꿔서 코멘트를 쓴 사람도 한 명 아는데… 뭐, 그러든지 말든지.

자신이 누군지 솔직히 밝혀지도 못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솔직한 말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하다는 게 그저 머리 속에 가득찬 xx을 정화없이 쏟아내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튼, 그동안 서버를 사용하게 해주었던 고객사에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Dec 182009

가끔 이런 글을 쓰는 분들 보면서 귀찮게 왜 저러나 싶었는데… 사람이 피곤해지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내 블로그는 지난 5년간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대충" "성의 없이" 쓴다. 당시에 공부하거나 경험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마구 늘어 놓는다. 그러다보면 중간에 늘여논 마인드 맵처럼 이리 저리 주제가 갈라져 보이기도 하고 앞뒤도 없고 결론도 없는 낙서 같은 글이 되기 일 수다. 나름 번호도 넣어보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는데 다 귀찮아서 그만뒀다. 나는 블로그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매우 아깝다. 아침에 일 시작하기 전에 지난 하루 또는 며칠간 머리 속에 있던 것을 그냥 끄집어내두고 잊으려고 하는 짓인데, 그걸 글을 다듬고 깔끔하게 쓰고 예제를 곁들이고 일일히 친절하게 증명도 해서 무슨 기고하는 기사처럼 쓸 이유가 없을 뿐더러, 그런 짓을 하기에는 시간이 매우 아깝다. 나는 블로그 글은 미리 주제를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쓰고 나서 교정도 절대 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영회가 하도 까서 요즘은 오자 정도나 한번 체크하고 올린다.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서 블로그를 쓸 이유를 아직 느껴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나는 스프링 전도사도 아니다. 무슨 벤더 직원도 아니고,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아니다 싶으면 버릴 생각도 있는게 스프링이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관심이 제일 많고 그나마 아는 기술이므로 글의 주제로 자주 선정될 뿐이다.

그래서 아예 자기 일에 바쁜 사람들은 블로그를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 중간 쯤에서 대충 왔다 갔다 하는데, 관성이 붙으면 매일 쓰고 또 안 쓰기 시작하면 꽤 오랜동안 안 쓴다.

이렇게 쓰다보니 별로 댓글도 안달린다. 내가 예상한 바다. 가끔 새로운 것을 공부하면서 쓸 때는 지나보면 틀린 얘기도 제법 있다. 누군가 그런 것을 미리 지적해주면 고마울 뿐이다. 그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가끔 동감해주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누군가 내가 썼던 글을 오해하거나 그 때문에 잘못된 지식을 전달받게 되면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친절하게 쓸만큼의 성실함이나 사명감은 없다.

그럼에도 글이 프로답지 못하다거나 정리가 안됐다거나 횡설수설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가끔 만난다. "기대를 잘못 했나 보다"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원래 인기도 없긴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이 생략된 채로 마구 갈겨 쓰는 글이니 이해가 잘 안되거나 엉뚱한 얘기처럼 보이기도 쉬울 것이다. 가끔 틀린 얘기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쪽에 편파적인 얘기도 있을 것이고, 가능한 자제하려고 하지만 다른 글이나 기술에 대한 매우 공격적인 얘기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려고 하지 그것으로 그 사람이나 대상 자체를 평가하거나 깍아내리는 것 같은 몰상식하고 예의없는 짓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짓은 인신공격이고,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것(조엘이 밥 마틴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던 게 바로 그런 이유였다)이라고 생각 한다.

이번 한 주간은 정신적으로 좀 피곤했던 시간이다. 인생의 큰 변화가 한번 더 닥칠 것 같은데… 오늘 검사가 끝나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다른 신경 쓸 것도 많은데 블로그는 맘 맞는 사람들하고나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장소였으면 좋겠다.

아무튼 내 블로그 운영하는 스타일이나 내용이 맘에 안드는 분들은 안 찾아주시기를 바란다. 나야 뭐 크게 상관없지만 본인들의 상쾌한 하루를 아침부터(나는 거의 아침에 글을 쓴다) 망칠 수 있으니깐 말이다.

주의사항 끝.

지난 10월부터 호주에도 본격적인 아마존 킨들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미국 국내용 킨들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3G 네트웍을 이용한 자유로운 아마존 상점의 이용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킨들의 장점을 많이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킨들 장비가 나왔고 호주 내 3G 네트웍을 통한 로밍이 지원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북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 2000년 초반에 후배가 선물해준 흑백 PDA를 사용하면서였다. 당시 구할 수 있었던 각종 텍스트 파일을 PDA에 넣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림이나 표, 복잡한 레이아웃이 없는 단순 텍스트만으로 된 책이라면 작은 화면이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읽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어디든 들고다니다 시간이 남으면 글을 읽을 수 있으니 그만큼 편리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작은 화면과 단순 텍스트에 제한되어있다는 것이 한계였다. PDF로 된 문서나 IT서적은 읽을 방도도 없었다. 읽을 책도 떨어지고 흑백 PDA는 고장이 나고, 이후에 장만한 델 컬러 PDA는 배터리 시간은 더 짧아진데다 너무 눈이 부셔서 밤에 읽기에는 눈도 아프고 해서 점점 사용이 뜸하게 됐다.

대신 그즈음부터는 IT서적을 PDF로된 이북으로 구입해서 PC에서 읽기 시작했다. PC나 노브북에서 문서를 읽는 것에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에 구입한 대부분의 IT책은 모두 이북 포맷을 선택했다. 처음으로 구입한 IT 이북은 아마 Hibernate In Action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에 처음 샀던 Manning의 책인 Instant Messaging In Java는 400페이지 짜리가 무려 80불나 했다. 당시 호주 달러의 환율이 낮았던 이유도 있지만, 프린트 된 책이 일단 물건너 오면 그만큼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존 등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었지만 역시 배송비를 생각하면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에 영국에서 직수입되서 서점에서 팔리던 Wrox 책들은 100~150불 짜리도 수두룩 했다. MS의 책은 250불짜리도 사본적이 있다. 그렇게 비싼 고가의 책 5~6권 사면 1000불이 훌쩍 넘는 것을 계속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그에 반해서 이북으로 구매하면 배송비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격도 프린트된 책보다 50% 정도 저렴하게 구매가 가능하니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책장이 모자라서 철지난 IT책들을 매년 몇 박스씩 내다버려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졌다. 그 뒤로 여행 중에 서점에 들려서 즉석에서 산 책 일부를 제외하면 IT책들은 거의 대부분 이북을 구입한 듯 하다. 또 베타-북 처럼 책이 쓰여지는 중에 미리 원고를 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도 유용하다.

하지만 책이나 글을 읽기 위해서 항상 PC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것만큼 귀찮은 것도 없다. 거실이나 여행지에서도 항상 노트북을 끼고 무엇인가 읽고 있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파워 없이는 기껏해야 2시간도 못가는 노트북도 문제다. 그나마 구입한 UMPC가 보다 유용하긴 했지만 PC가 가지는 한계를 그다지 극복해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아마존에서 킨들을 발표하는 것을 보았다. 바로 내가 오래동안 기다려왔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미국내로 제한된 무선 서비스의 한계로 인해서 바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 해외에서도 구입할 날이 있겠지 하면서 기다린지 이제 2년쯤 된 것 같다. 드디어 호주를 비롯한 100개국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버전이 출시되었고, 정식 구매가 가능해졌다. 가격도 더 저렴해졌고.

 

요즘 호주 달러가 미친듯이 올라서(US달러가 떨어진 것일지도..) USD 90센트를 넘어버렸으니 USD로  결재하는 상품의 구매가 그만큼 부담이 없어졌다. 시험이 끝나고 기분이 좋은 아내를 살살 꼬셔서 호주용 킨들 구매를 허락 받는 데 성공. 아마존의 글로벌 킨들 구매를 선택하고 4일만에 DHL로 킨들이 도착했다.

첫 사용 느낌은 그동안 듣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마치 종이에 인쇄된 듯한 미려한 글자체와 눈에 부담 없이 화면, e-ink의 특성인 페이지 넘어갈 때 보이는 느릿한 전이효과 등등.

네트웍 연결을 켜보니 3G 네트웍에 바로 연결된다. 아마존의 킨들 사이트에 접속해서 책 검색도 할 수 있고 상세 정보도 볼 수 있다.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책 리뷰도 모두 볼 수 있다는 것. 책 외에도 신문, 잡지, 블로그 등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유료긴 하지만. 실험적인 기능으로 들어있는 웹 브라우저를 이용하면 간단한 웹 사이트 조회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구글과 위키피디아 검색을 지원한다. 3G 네트웍을 이용하지만 가입비나 데이터 사용료의 부담 없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GMail이나 Twitter에 접속해서 메일을 읽거나 트위터 업데이트 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오옷!

그러나 기쁨은 잠시. 킨들을 아마존 계정에 등록하고 위치를 선정하고 난 후에 다시 접속해보니 위키피디아를 제외하면 웹 브라우징이 아직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경고 메시지가 나온다. AT&T 네트웍에 대한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니 미국내 말고는 무한정 데이터 통신을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인가보다. 좋다가 말았다. 그래도 위키피디아 글이라도 읽을 수 있는게 어디냐. 킨들 뉴스를 읽어보니 미국 외에도 웹 브라우징 서비스를 앞으로 제공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아마 사용자가 늘어나서 그만큼 이익이 생기면 3G 네트웍 비용도 그만큼 감당할 수 있을테니까.

물론 전망은 그리 밝지 많은 않은 듯 하다. 킨들에 대한 경쟁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12월부터 판매되는 반스앤노블의 눅(Nook)은 가장 막강한 경쟁 제품인 듯. 3G 같은 일반 무선 네트웍만 아니라 Wi-Fi도 지원하고, 50만권에 달하는 공개된 이북을 포함해서 100만권의 이북을 이용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 아마존이 제공하는 킨들용 이북은 아직 35만권 수준이다. 호주의 경우는 출판사나 저자의 판권 문제로 인해서 구매 불가능한 책도 있다. 제법 유명한 저자들의 책인데도 최근 서적을 제외하면 아직 킨들로 구매 불가능한 것도 있다. 뭐.. 아마존이 꾸준히 노력해서 이북 판권을 늘리고 있다고 하니 걱정할만한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개인 문서나 다른 이북 파일을 변환해서 킨들에서 읽을 수 있기도 하다. PDF지원은 크게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사실 조금 걱정했는데 막상 써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아주 복잡한 그림이나 표가 있는 PDF 문서가 아니라면 간단한 변환 과정을 거쳐서 킨들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PC에서 전송할 때도 굳이 USB케이블을 연결하지 않더라도 아마존이 제공한 개인 메일로 파일을 전송하면 무선 네트웍을 통해서 자동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 외의 네트웍을 이용하는 경우는 책의 다운로드나 전송에 대한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용은 지역마다 다르긴 한데 호주는 책 당 $2 정도의 비용을 받는다. PDF 같은 개인 문서의 경우 무선 네트웍으로 전송하면 1M당 $1 가량을 지불해야 한다. 이럴 때는 Wi-Fi를 지원하지 않는 점이 좀 아쉽기는 하다. 만약 무선 네트웍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싶다면 일단 PC로 다운로드 받아서 USB케이블로 킨들에 전송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래도 워낙 책들이 저렴하게 나와있어서 서점에서 구입하는 것에 비하면 거의 절반 내지는 2/3가격에 보고 싶은 책을 살 수 있다.

이북리더는 아이폰이나 요즘 유행하는 각종 전자장비들 처럼 이런 저런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북리더는 책을 읽기 위한 도구다. 킨들은 2G 고정 메모리에 1500권 정도의 책을 넣을 수 있다. 오디오북이나 mp3도 지원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이용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입해서 지금보다 더 많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북리더에서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블로그를 읽고 등등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책 100만권을 10분만에 복사할 수 있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람. 한달에 책 한권도 제대로 안 읽는다면 그런 기능은 아무 의미없다. 짧은 아티클이나 기사, 블로그 등은 PC로 보는게 낫다. 굳이 킨들 같은 것을 사서 사용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편안하게 장시간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킨들에서 IT서적을 읽을 생각은 별로 없다. 개발서적은 PC 앞에서 읽고 코딩도 해보고 관련 정보도 빠르게 검색해보면서 보는 것이 낫다. 킨들에서는 IT서적 외의 다른 책을 읽는 용도로 사용할 것이다. 많이 읽어봐야 일년에 100권이면 최대일 것이다. 비용으로 따져보면 책 한권당 $5-$10 절약된다고 할 때 30-50권정보 보면 일단 장비값은 빠질 듯 하다.

킨들의 좋은 점은 책을 계속 담아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목록이 너무 많아서 책 선택하기 귀찮으면 일단 삭제해도 된다. 삭제라기 보다는 장비에서 제거(remove)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필요할 때는 archived books 목록에서 찾아서 다시 다운로드 받으면 된다. 다운로드 비용은 책 한권당 지불하는 것이므로 여러번 반복해서 다운로드 받아도 상관없다. 결국 아마존 킨들 서비스 안에 내가 구입한 책의 서재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면에서 이전보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면에서 킨들은 딱 최소한의 꼭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적당한 도구다. 그래서 앞으로 애플이나 MS, 다른 벤더에서 아무리 화려한 기능을 갖춘 이북리더가 나오더라도 별로 부러울 것은 없을 것 같다. 한달에 10권도 안되는 책을 다운 받는데 초고속 W-Fi 네트웍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심심해서 책 말고 다른 것을 읽고 싶다면 나는 아마존 서평을 읽으면 될 듯 하다. 어떤 책들은 책 내용보다 서평이 더 재밌는 경우도 있다. 네트웍 비용 걱정 없이 3G네트웍을 이용해서 각종 책의 서평을 읽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듯.

나는 누울 수 있는 게으름뱅이용 소파나 침대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반 책은 옆으로 누워서 읽지 않으면 읽기 힘들다. 바로 누워서 보면 책을 들기도 힘들고 책이 단단한게 아니니 한쪽이 자꾸 내려와서 제대로 잡고 있기도 불편한다. 하지만 킨들은 300그램도 채 안되는 가벼운 무게인데다, 단단한 몸체를 가지고 있으니 누워서 팔로 잡고 읽기가 매우 편하다. 워낙 가볍고 작아서 한팔로 들어도 충분하다. 처음에는 왜 킨들의 왼쪽 오른쪽에 두 개의 Next Page버튼이 있는지 의아해 했는데, 사용하다보니 그게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어느 한손으로 잡고 읽어도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킨들의 또 한가지 매력은 내장 사전기능이다. 매번 검색할 필요도 없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커서만 그 단어로 이동시키면 아래 사전내용이 나온다. 또 TextToSpeech 기능도 있어서 왠만한 책은 오디오북 파일이 따로 없어도 괜찮은 발음으로 내용을 들을 수도 있다.

무선 네트웍을 꺼두고 보면 2주까지도 버틸 수 있는 배터리도 장점이다. 백라이트가 없어서 밤에는 스탠드를 켜야지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반면에 LCD화면은 제대로 보기 힘든 밝은 햇빛 아래서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유용한 듯 하다.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페이퍼나 아티클을 킨들에 담아서 읽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다. 대충 훝어보고 말 블로그 글이나 인터넷 기사가 아니라 좀 생각하면서 읽고 싶은 것들이 그렇다. 그럴 땐 HTML파일로 글을 받아서 간단한 변환을 거치면 충분하다. 호주 미디어 그룹은 킨들의 제휴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애플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북벤더와 논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직은 호주 신문을 킨들에서 읽을 수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간단히 내가 읽고 싶은 글들을 인터넷에서 가져와서 킨들용 이북 파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좀 더 살펴보니 기존에 구매했던 Pragmatic Bookshelf의 책들도 PDF 말고도 킨들용 파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스가 담긴 PDF파일은 변환하면 들여쓰기가 잘 안맞아서 읽기 불편한 점이 있는데, 출판사에서 직접 킨들용으로 제작된 파일에서는 제법 보기 좋게 나온다. 괜히 PDF 읽는 답시고 무게는 두배인데다 호주내 무선 인터넷 지원도 안되는 킨들DX를 사지 않기를 잘한 듯. 가끔 킨들 책 검색을 해보면 DX에 최적화되었다는 책이 나오기는 하지만(‘프레젠테이션 젠’ 같은), 뭐 그런건 인쇄된 책 말고 어떤 이북리더로 읽어도 그다지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니 무시.

아무튼 덕분에 책 더 많이 읽을 수 있기를.

요즘엔 시간은 많이 잡아먹고 영양가는 덜하면서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각종 블로그, 트위터, 카페, 뉴스 사이트 등등을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일하다가 지쳐서 뭔가 읽고 싶은 것이 땡길 때는 PC 앞을 떠나서 킨들 잡아들고 편안한 장소로 가는게 좋겠다.

킨들로 처음 구매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필립 얀시의 책이다. 자주 가는 동네 서점의 가격과 비교해서 절반가로 구매. 폼나게 책장을 장식할 수도 없고 친구들에게 빌려줄 수도 없지만 그래도 저렴하게 좋아하는 책을 사전도 필요없이 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앞으로는 책을 읽고 나서 블로그에 서평이라도 쓰는 습관을 들여봐야겠다.

강하고 딱딱한 말보다 재치있는 표현과 유머가 상대방의 마음을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이 메일을 받은 담당자가 어떻게 반응했을지 한번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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